호랑이가 될 수 없다면 호랑이 가면이라도 써야지
멘탈이
공중부유할 때가 있다.
일단 그때는
멘탈이 부유 중이라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영영 멘탈이 날아가버리기 전에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멘탈이 날아가는 그곳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야수들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휴…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현실을 바라본다.
대부분 멘탈이 흔들릴 때는
현실의 무게가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를
훌쩍 뛰어넘었을 때다.
멘탈의 근육이
아직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없는데
무거운 현실이 짓눌러 올 때면
자세는 무너지고
때론 그 무게에 깔려버린다.
짓눌로 깔린 그 자리엔
상처, 좌절, 후회, 죄책 같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강해져야 한다.
사실 글쓰기도
멘탈의 근육을 더
탄탄히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생각,
사고의 흐름,
나의 행동들을
가능한 한 놓치지 않고 인지해서
그것들을 글로 뱉어내어
객관화하고,
그것들이 내 감정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랄까나.
때때로,
혹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는
사람의 탈을 쓴 야수를 마주한다.
반면에 나는,
야수가 아닌
순한 동물에 가깝다.
그래서 야수 같은 부류를 보면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무섭거나 두렵기도 하다.
강한 이빨과 발톱이 무섭기보다
‘말’ 혹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들의 똘끼 때문이다.
무엇이 저들을
야수로 만들었을까?
애초에 야수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 환경으로 인해
야수로 길러졌을까 궁금해진다.
혹은
내 안에도
저런 야수가 있을까?
어떤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
야수의 본성이 터트려지면
나 역시
야수 같은 사람이 될까?
같은 생각도 해본다.
멘탈이 털릴 때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그 중심에
야수가 있다.
야수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야수는
이성을 잃고 날뛰는 야수다.
싸움도
레벨이 맞아야 성립이 되는데
까끔 마주하는 이성 잃은 야수는
도무지 레벨이 맞지 않아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이때
멘탈이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당황스러운 이런 상황에,
멘탈이 스멀스멀
부유하기 시작한다.
현실감은 사라지고
인지능력은 덜어지며
또렷함은 흐려진다.
멘탈의 근육을
늘 단련하려 애쓰긴 하지만
그럼에도 늘 이런
야수들이 발생시키는
무거운 현실들은
달갑지 않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야수 같은 사람은
싫다.
이성을 잃은 야수는
더더욱 싫다.
그래서 나는
순한 동물임에도
그들과의 싸움에
늘 대비해야 한다.
호랑이가 될 수 없다면
호랑이 가면이라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