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고통은 ‘죽음‘을 마주하게 한다.

극한의 고통 앞에서 나는 죽음을 마주한 철학자가 된다.

by 이키드로우

농담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아프면,

본의 아니게

철학을 하게 된다.


거창하게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에 대해 돌아보거나

삶 자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코로나 창궐 전이었다.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사경을 헤매며

아팠던 기억이 있다.

열이 1도씩 오를 때마다

머리를 망치로 쾅쾅 때리는 듯하고

코는 막히고 입은 말라

호흡도 힘들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듯한

저세상 고통을 맛보았더랬다.


공교롭게도

3일 전

수액치료 후,

몸 전반에 약간씩 이상이

있었던 부분이

약속한 듯 동시에 아파왔다.


오른쪽 뒷목을

타고 오르는 두통은

벌서 목을 지나 머리 위쪽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38.2~4도 열이 계속되었다.

한동안 좋지 않아서

헬스 하며 잡았던 허리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더 문제는

장쪽까지 문제가 생겨

화장실 들락거리는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


아프면 멍해진다.

계속 내리 잠을 청했다.

잠시 일어나면 뭘 먹었다가

또 화장실을 가고

두통이 심해지면

또 잠을 청하 고를 반복했다


한 3일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멍함의 단계를 넘어

생각이 깊어지는 단계로

넘어간다.






몸이 아작 나있는 듯한

상황에서도

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지금의 생각과 느낌들을

잘 기록해 가며

나를 더 성찰하고 싶은

본능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

아픔이 극심해지면

삶을 ’ 반성‘하게 된다.


신 앞에 어떤 죄가 많아

지금 뭔가 벌을 받는다거나

그런 발상에서

삶을 반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픔을 기회삼아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한번 더 돌아보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나,

고의로 죄를 짓지는 않았나,

마음의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검어지지 않았나,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극심한 아픔은 내게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임사체험과도 같다.


너무나도 아픈

고통의 경험 속에서는

마치 죽음이

바로 내 코앞에 다가와

있는 듯하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삶을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치

내일 죽는 느낌으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아…

글을 쓰는 동안에도

쿡쿡 쑤셔대는 머리와

불편한 속,

아픈 허리는

나를 괴롭힌다.


진땀이 난다.

글쓰기 전 진통제를 하나

먹었는데

효과가 있나 보다.

열이 내리고 있어

땀이 나는 것 같다.


두통이 없어야

글에 집중할 수 있겠는데

지금은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

하고픈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