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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Jul 02. 2024

두 번째 창세기

염증이 온몸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이번에도 머리에서 시작되었을 그것은 한동안 턱관절에 머물러 아무것도 씹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시큰한 손목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게 없다. 겨울이 오려면 멀었다. 여름은 시작도 안 했다. 순식간에 몸무게의 7킬로그램이 사라졌다.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작년에도 겪어봤으니 그러려니 또 그런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수용은 무슨 지친게지. 이러다 낫거나 말거나 차츰 늙어가는 거지.


식사를 고쳤더니 열이 줄었고 열이 줄자 모든 욕구가 줄었다. 욕구가 줄었더니 할 일이 줄었고 잠도 오지 않게 되었다. 잠도 욕구인 것이 밤처럼 자연히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일정량의 수고를 채워야만 하는 귀찮은 작업이지. 도대체가 거저 오는 게 없지. 마지막 밤을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성실히 살아가야 하는 걸까. 적당히, 그러나 끊이지 않는 부지런한 힘들이 하늘너머에도 가득하겠지. 과연 너희는 생각도 감정도 없겠다. 너희들에겐 그러면 무엇이 있냐. 가슴 안에 뭐가 달렸냐. 나는 너희처럼 큰 꿈을 꾸는 존재들이 싫어. 아무도 꿈은 이루지 못하고 책임만 흘리거든. 이몸에서 저몸으로. 오래된몸에서 새몸으로.


행복을 위해 달리면 다였지. 그에 따른 고통은 필연이니 상관없었지만 내가 달려 나가며 만들어지는 마찰음과 배기가스 같은 것들이 끝내 어디로 향하는지, 나의 행복이 무엇이 되는지 지독하게 확인하고 나서 나는 전과 같이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고 많이 괴롭다. 삶은 잘 먹고 잘 잔다 밖에 없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이지. 그러나 잘 먹기 위해서 사람들은 뜻밖에 죄를 많이 짓는다. 그래서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못 자기도 한다. 저 하늘 같은 바보들은 아마 두 발 뻗고 매일 꿀잠 잘 거야. 그러나 이 시대에 잘 잔다는 것은 잘 지낸다는 것은 필시 문제가 있는 사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나는 어느덧 잘 못 지낸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끓어넘치는 세상에 나는 없도록 한다. 없다. 내 것이 아니다. 나 기억되어진 뒤로도 끊임없이 드러나는 온갖 쓰잘대기 없는 것들을 무시하고 끊어내고 참는다.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사랑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수많은 눈코입이 미쳐 날뛴다. 그들은 희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먼 사람들 가운데 희생양을 정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정해진다. 많은 이들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험하고 무자비하므로 정상적인 생명활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그 생각에 압도되어 오랫동안 가만히나 있다. 누군가 날뛴다면 다른 누군가는 침묵한다. 그러니 이제와 나를 무엇으로 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시끄럽고 나는 한낮에서 가장 깊은 밤으로 옮아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미약하게나마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창세기를 몇 장인가 들춰보다가 짜증이 나서 관뒀던 성경을 일 년여 만에 다시 펼쳤다. 거지 같은 창세기. 그러나 나머지를 위해 지나가야만 한다. 창세기에는 인간들과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같은 여호와, 그리고 그의 졸개 같은 천사가 나온다. 그들의 행보와 인간과의 대화내용을 미루어 보면 그들은 신이라기보다는 미개인에게 찾아온 문명인, 발달된 기술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간들로 보인다. 그들은 인간에게 협박하고 능구렁이 소리도 하고 언어마저 교란한다. 이처럼 지금의 내가 바라보니 당시의 하나님, 천사라는 존재 또한 미개하고 나약해 보인다. 과연 세상은 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과연 그 원수들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의 기록에 적히기나 할까. 원수 또한 별수 없이 우리에게 있다. 나는 내가 원수이자 생명의 술래라는 걸 안다.


29장까지 읽으며 내 이름의 의미와 나의 포피가 태어나자마자 썰려나간 것이 할아버지의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례라니.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이제라도 사과하세요. 그리고 나 좀 잘살게 해 줘요. 찾아가 문 두드리기 전에.


성경을 읽는 것은 잠시라도 눈을 붙이기 위한 방편이다. 눈과 정신을 피곤하게 할 뿐 그밖에는 아무 소용없는 글자를 읽는다. 어둠이 걷혀도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꽉 막힌 시간에 앉아 있다. 휙 하고 노래나 악기에라도 흥미가 돌아온다면 좋으련만 나의 어느 곳에든 온종일 시퍼런 여름만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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