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회재 Jul 03. 2024

빛이 있자 귀여운 요셉이 죽었다

야곱은 라헬을 좋아했지만 그의 외삼촌은 그를 오랫동안 부려먹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야곱은 부족 문화를 앞세운 외삼촌에 말에 따라 언니 레아와 먼저 결혼하게 되는 바람에 라헬을 얻기 위해 외삼촌과 계약한 7년에다 7년을 더해 총 14년을 개같이 일한다. 그 뒤로도 6년을 더 일하게 된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사회를 기준으로 군더더기를 계속 제거해나가다 보면 야곱이 그랬듯 일반적인 삶은 결국 사랑, 사람을 얻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그것을 얻어 번식을 하고 무리를 만든다. 그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노아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약속한 말이다. /저 넓은 땅 모두 네 거야, 네 자손들을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어, 자녀 많이 낳고 번성해라, 네가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거고 그로부터 여러 왕들이 나올 거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축복해 줄 거임.../ 인류가 번영하는 것에 제약이 없고 그래야만 먹고살 수 있는 시대였으리라. 그 맹목적인 믿음이 끊임없이 이어진 결과 지금의 나는 어떤가. 유전자와 기술에 끊임없이 정보들이 누적된 결과 번영이란 나날이 좁고도 험난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나는 어느덧 내가 나의 마지막임을 직감하기에 이른다.


축복은 마음이고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와 축복, 기도와 같이 보이지 않고 잘 느끼지도 못하는 일에 사람들은 볼 일이 없다. 이 시대의 마음은 또렷한 숫자가 적힌 물질이다. 숫자로 구분 지어야 할 만큼 종류가 대단히 많아서인데 반대로 의도적으로 구분 지어서 많아 보이는 면이 더욱 크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만이 하나님인양 모두를 또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마음의 거푸집을 여러 개 두어 다목적의 생산을 한다. 꼴 보기가 싫다. 10원 한 장 소비해주고 싶지가 않아. 고통의 홍수가 휩쓸고 간 폐허에 남은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는 도로 마음밖에 주고받을 것이 없다. 그제야 마음이 눈에 보이겠지. 삶은 더할 나위 없이 그만큼인 것인데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바보들은 여전히 애새끼마냥 물질 따위의 장난감이나 무분별하게 만들고 무분별하게 얻기 위해 산다. 매일매일을 새로운 물질로 정신을 도배한다. 뇌는 물론 영혼마저 마를 새 없이 덧칠을 해놔서 이제와 굳이 인공지능이 필요한가 싶다. 이미 인간이 기나긴 시험과 실험을 걸쳐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다. 구원처럼 망상에 빠져 역할을 다했지만 아마 그들이 가장 먼저 삼켜지지 않을까. 그러고선 자기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댄다. 그게 가장 큰 죄인 걸 지 입으로 뱉으면서도 모른다.


창세기라는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없는 이유는 그가 더 이상 인간에게 줄 땅이 없으며 인간이 과거와 같이 번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하나님을 부르짖던 수많은 인간들이 불쑥 환상에 사로잡혀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거기에 하나님이 있다 말했다. 창세기에 드러난 하나님, 여호와는 의식의 측면이자 그 귀하의 예언적, 욕망적, 구상적 기지이다. 그냥 하염없이 뇌이자 우주이고 인간이다. 창세기의 우리는 마치 하나님의 계획인 것만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순한 인과이며 그를 걸고넘어지는 양심들의 투쟁이다. 빛이 있은 뒤 머지않아 그 귀여웠던 요셉도 늙어 죽어버렸다. 무엇에게는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다. 그러한 생사의 깜빡임이 계속되면 별처럼 반짝인다. 수많은 별을 바라보듯 할지 몰라요. 무엇으로부터 멀어진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창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