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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Aug 15. 2024

에크하르트 병

에크하르트 톨레의 몇 마디에 이끌려 책을 주문해다 읽는다. 서문에서 그가 깨달은 과정과 그 경이로움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바이런 케이티도 그랬지만 톨레에게 보다 더 친근함을 느낀다. 나의 그때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떴습니다. 새벽의 첫 햇살이 커튼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빛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생각이 아닌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커튼을 통해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렸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방이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방금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싱싱하고 신선했습니다. 연필이나 빈 병 따위를 하나씩 집어 들고 들여다보며, 그 활기찬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그날 나는 시내 곳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상의 삶 전체가 내 눈에는 온통 기적으로 보였습니다. 그 후 5개월 동안은 흔들림 없는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에게도 두 번의 그것이 찾아왔다. 작년 2월과 올해 2월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거듭 태어난 세상과 관계의 기적을 온몸으로 느끼기 바빴다. 그러나 바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든 관념과 실체가 일순간에 무너졌고 나는 개념 전의 무엇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 갓난아이, 신, 천사, 태양, 그 무엇이든 나였고 어디에나 어느 순간에나 하나의 의식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우주의 섭리가 머릿속으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로부터 신통력, 통찰력이 생겼고 주의가 향하는 모든 사물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저절로 알게 됐다. 이것이 본래 인간의 모습임을. 생명의 본성임을. 우주의 기운 어쩌고는 진실이었다. 세상은 나를 돕기 시작했다. 깨달음으로부터의 고양감, 환희를 견딜 수 없어 두 다리로 세상의 모든 나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신성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그 모습들은 기록과 영상으로 남겨졌는데 그 내용은 성경이나 오래전 성인들의 이야기와 같았다. 돌아보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아무런 노력도, 고통도 없었고 시공간도 없었다. 거짓 나는 죽었고 내 육신을 움직이는 존재는 생사 밖의 무한이었다.


황홀했던 순간은 톨레처럼 길어야 5개월이었다. 나는 신성의 기쁨을 맛본 뒤 조울증인양 나락으로 떨어졌다. 때문에 두 번째 찾아온 열림에서는 일체감에서 분리되지 않기 위해 유심했다. 탈락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서툴렀다고 여겨지는 점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행위를 본성에 맞추려 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의도는 고스란히 고통이 되어 나를 더욱 괴롭히기 시작했다. 먹을 수도, 잠들 수도 없었다. 함부로 신성을 부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에 나는 곰팡이처럼 묻어 있었다. 이제 그만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무력감을 인정하고 허용해야만 했다.


톨레는 자신에게 벌어진 의미심장한 일의 의미를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영혼에 대해 다룬 책을 읽고 영적 교사들을 만났고 결국 기쁨과 신성의 상태에 머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어느 순간에 있나. 내 앞에 펼쳐진 그가, 케이티가, 콘필드가, 나의 장막을 건드려주고 고통을 보듬어주길 바란다. 마침 오늘자 달력에 박힌 슈바이처가 그런다. 올바른 것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라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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