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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Aug 17. 2024

세금 내기 싫은 소리

고지서를 받아 들고 잠시 가벼운 감상에 젖는다. 안 굶어 죽고 일 년을 또 버텼네. 장하네. 그러다 괜히 심술이 난다. ―시민 여러분의 값진 세금, 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겠습니다―못 미더운 유세자의 빤한 외침 같은 게 고지서 가장 높은 곳에 박혀있다. 징하네. 왜 내야 되는 걸까. 그에 대한 안내는 아주 형편없어서 모에 적힌 과세 근거라는 지방세법 74조부터 79조까지를 직접 찾아봐야 했다. 그러나 법이라는 근거조차도 한낱 고지서의 연장일 뿐이었다. 법이 그렇게 작동하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나라는 허상이구나.


주민세는 간략히 인두세라는 설명이었다. 인두세. 사람 머리를 가축 헤아리듯 해서 어떡하면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지 수작질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런 사업은 절대로 투명할 수가 없다. 전년도 주민세를 사용한 내역 정도는 도의적으로라도 간략하게 첨부할 수 있지 않나. 왜 이 나라는 숨기고 사기 치는 비열하고 무능한 존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까. 국민의 신뢰를 얻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영 없나 보다. 영세기업에서도 이렇게는 안 한다. 반대로 하청이나 주는 대기업에서는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버러지 애송이였다.


나는 세금, 법률에 관해서는 아주 모른다. 별나게 타고나길 어릴 적부터 돈에 관련한 것이라면 인상이 찌푸려졌다. 십수 년 전 재테크 열풍이 불 때에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불안했다. 회사에서는 분기마다 성교육 등의 법정의무교육을 빙자한 보험이나 비과세 복리 예적금 상품 영업이 이루어졌다. 관심이 없었다. 다만 불안했다. 불안의 출처는 언제나 국가와 기업들이었다. 그들에게 빌어먹고 사는 모든 언론과 매체들은 불안을 증폭시키기에 더욱 적극적이어야만 했다. 죽을 때까지 사회질서 쪽으로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에 속아 쓸데없이 분개했고 거짓 세상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간간이 뉴스나 콘텐츠로 접하는 내용에서 질서가 시대를 못 쫓아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깊이 알고 싶지 않다. 내 기질을 가지고 들쑤시다 보면 끝내 흉기나 석유통을 들고 난동을 부릴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어떻게 살지 막막한데 평생 재워주고 먹여줄 곳이라면 거기가 형무소든 아오지든 감사한 일이다. 어디서나 마음이 할 것이고 작은 천국은 나타난다.


돈이 싫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살기 싫다는 말과 같다. 나는 태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것 없이도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돈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잘살지 않았던가.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이만큼이나 왔다면 누구나 돈 좀 안 벌어도 잘살게 도와주길 바란다. 스스로를 돕지 말고 대의와 희생으로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길 바란다. 포화로든 허무로든. 어느 쪽으로나 결국 인간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거대한 질서 안의 교육으로, 통념으로, 병사로, 노동으로, 국가와 사회에 부려지고 제한당해 왔다. 인간을 인간 자체로서 가치를 느끼게 해 주고 보듬어 준 존재들은 그 밖에 있었다. 그들은 국가와 질서 안의 존재가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교회가 그랬고 커서는 무엇이 됐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랬다. 선한 사람은 늘 그 자리에 머물며 빛을 낸다. 탐하고 뽐내고 나서고 유세 떨고 군림하는 수준 낮은 짓을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진짜 좋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로부터 사회가 작동하는 것이지 이깟 세금 따위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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