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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마침

by 자진유리




진지해지려는데 모기 느낌

막 친해지려는데 모기 느낌

모기톡톡 카카오톡

한숨 쉬고

욕하고

눈 비비고

마지못해 주먹 쥐고 일어나보지만

휙휙날아다니는 창검은 모기냐 눈깔이냐

분마다 주의 뺏기고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보면 없는 양자의 이중성

화가 나고

집어 치고

안 해

여름 아닐적에나 각오하는

여름을 잘 나자

지혜를 얻자

안 해

열리는 모두를 꾹 닫고

열도 무서워 밥도 안 먹고

아니 모기장이라도 치든가

모기장을 친다고 쟤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생각이 오지 않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거야

왜 이것도 하나 해결을 못해

모기는 아무도 해결을 못하지

그러려니 할 수도 없는 거야

모기를 어떻게 좋아하고 감사해

걔를 다정하게 대해줘 봐

생긴 게 그런 걸 어떡해

방식이 그런 걸 어떡해

어쨌건 날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내가 미친 게 아니고

미친 여름도 비정상은 아냐

여름이 호랑이보다 무섭지

호랑이는 서늘하기라도 하잖아

내 삶의 반을 시달리고 있으니

나는 모기라는 거룩한 피조물에게 밥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냐

6.25% 확률로 변이된 내 피가 그리도 맛있냐

고생해서 만든 피

쉽게 얻으려 달겨드네

살아 있는 즙만 쪽쪽 빨아먹고

나는 피가 넘쳐도 살아 움직이질 않네

모기 떠난 땅 화산처럼 부풀고

번개들 내리치니

물고기 다 죽고 없다

남은 피가 물고기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금사과를 몇 개나 사 먹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먹어서 얼마나 낮은 확률로 물고기가 되는지도 모르면서

개새끼

아는지 모르는지 목숨을 걸었나

너 목숨 걸고 덤비는 거 맞아?

천장에 붙은 모기에게 설교하다 말고

니가 사람이래도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지

그냥 뒤져라 후려쳤다

성을 내고 나니 더더워죽겠다

꽁꽁 닫아도 침투하는 금간 몸

이럴 바에 실컷 들이닥치라

활짝 여니 찬바람

젊은 남녀 시시덕거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도 있었네

내탓이구나 더운 건 내 탓이야

굶어도 오고 숨 참아도 오니 남은 건 나라는 못된 에고

여름도 모기도 오토바이도 정녕 나 때문이로구나

나 때문에 일어나는구나

역시 나는 없는 편이 좋겠다

그러나 나를 없애는 게 어디 쉬운가

봄의 은총 기다리며 없었던 일 되기 쉬운가

이 빌어먹을 생각은 말이야

아무래도 엄마한테 물려받은 거 있지

핍박 덩어리 힘들게 낳았지 힘들게 키웠지

단한순간도 힘들지 않은 적 없으니

나는 무럭무럭 자란 힘듦목인 거야

엄마는 미저리였대

아빠는 모든 걸 주께 맡긴 한량이래고

그 위에는 엄근진 목사도 있고 초상만 남은 기인도 있었다지

정말 최악이야

그것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 줄 알아?

집구석에서 눈알이나 굴리며 모기나 잡고 있단 말이야

이놈의 비문증도 모기 때문이지 근데 모기는 나 때문이란 말이야

어쩌란 말이야

아오 시끄러

모기와 배달오토바이의 공통점:

시끄럽다.

목숨을 건다.

잠들만하면 깨운다.

병을 퍼뜨린다.

모기와 커피의 공통점:

탁탁 팝핑 하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모기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볶아 먹었을 텐데.

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때 되면 알아서 와주니 좋고.

그럼 먹고살 걱정은 않을 텐데.


괴물이 나오는 영화에서

빌딩보다 큰 코끼리 괴물은 워낙 압도적이라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늘 작은 괴물들이 사람들을 해쳤다.

작은 것은 작기 때문에 더욱 세밀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일게 되고 분석하고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착하게 된다.

집착하다 보면 현미경 들여다보듯 거대해진다.

모기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곤충이 된다.

전부가 된다.

수많은 환상, 두려움 속에 산다.


고작 모기 몇 마리에 발작하는 것좀 봐

이 무의미한 형태소들이 죄다 모기라면 날 동정하겠어?

이보다 훨씬 많이 잡아 죽였지

왜 자꾸 모기가 나타날까 가만 생각해 봤어

모기는 살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죽으려고 오는구나

살고자 했으면 눈에 띄지 않게 삶을 누리고 있겠지

판다처럼 죽을 확률이 낮은 밥을 먹겠지

굳이 이런 구렁텅이에

누런 벽에

가만 붙어 눈치채주길 기다리고 있진 않을 거 아니야

이래도 안 죽여 저래도 안 죽여하면서

무심한 나를 자극하지는 않겠지

내가 고통을 창조하게 만들진 않겠지

죽기 위해서

거듭나기 위해서 애쓰는 거였구나

왔다가도 돌연 도망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고

그래 너는 대체 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데




줄곧 의심해 왔던 주방후드를 틀고 그 안으로 모기약을 뿌렸다. 모기가 여기저기서 산개해 나왔다. 외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환기통을 양파망으로 감싸 붙이고 환기통과 내벽의 틈은 알루미늄포일을 구겨 막았다. 맥 빠지게도 그러고 나니 모기 한 마리 안 보인다. 고작 10분 걸렸다. 이렇게 뻥 뚫려 있었으니 겨울에도 추웠지. 엉터리 업자들의 삐뚤어진 입술이 몇 년 만에 다시 떠오른다. 몰래 집에 구멍 내고 마음에 구멍내고 달아난 시커멓고 추악한 자지들. 인테리어를 위한 인테리어나 하고 다니는 쓰레기 새끼들. 서투르고 게을러 빠져 입만 나불대는 조선족이나 부리는 씨발새끼들.


나는 이 버림받은 집을 안전하게 만들든지 이대로도 평안할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질은 마음이라는 집이다.

이것을 활짝 열 수 있어야 사랑으로 시작될 수 있다.

야. 고작 이년밖에 안 지났다. 뭐가 그리 조급해.

집도 고치고 나도 고치는 감사한 시간이라 타이른다.


너희, 여기 모인 인간 아닌 악마들은 장애물이다.
이 우정과 사랑의 감로수를 마시고 가거라.

요술을 부리고 있던 악마들 중 셋이 사라졌다. 남아 있는 악마들이 마법적 장애물임을 깨달은 밀라레빠는 자신감에 찬 노래를 불렀다.

너희 악마들이 오늘 이렇게 와준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내일도 와야 한다.
가끔씩 우리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 노래에 다시 세 악마들이 무지개가 사라지듯 사라져버렸다. 남은 한 명의 악마는 인상적인 춤을 추었다. 그래서 밀라레빠는 생각했다. "이놈은 사악하고 힘이 세군." 그래서 그는 깨달음의 절정을 노래했다.

너 같은 악마는 날 협박할 수 없다.
너 같은 놈이 그럴 수 있다면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도 별 의미가 없으리.

악마야, 네가 더 있겠다면 난 괜찮다.
친구가 있으면 데리고 오너라.
우리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자.

바즈라다라와 붓다시여,
이 비천한 자가 온전한 자비를 갖도록 축복을 내려주소서.

이렇게 노래하고 밀라레빠는 우애와 자비심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악마의 입 속에다 자신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악마는 그를 잡아먹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깨달음 이후 빨랫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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