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감사합니다. 건강보험 문제가 잘 처리되어서요.
아침일기에 짧게 남긴 내용입니다.
그것을 떠올릴 때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에게는 가장 친숙하고 푸근합니다.
성모님, 부처님, 알라님, 천지신명님 같은 이름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이 밝아오면 작은 소리로 '주여... 주여...' 한참을 묵상하시고 나서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모습이 떠오르면—왜인지 모르겠지만—나도 어서 빨리 내 하나님을 주님으로 바꿔 부를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둘의 의미 차는 알지 못하고 알기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할아버지가 묵상하는 모습이 불쑥 떠오를 때면 나도 따라 그저 주님을 원하고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느릿느릿 돋아나는 태양처럼 나의 아침을 살며시 깨우던 나지막한 목소리, 울림, 떨림. 그 종소리는 이제 내 안에서 때때로 울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입니다.
할아버지의 주님을 원하는 것은 내 하나님이 아직도 많이 서툴고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부조리한 삶을 계속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내 잘못은 없습니다.
덕분에 나는 어제 휴일에 문의전화도 못 넣고 한동안 애만 태워야 했습니다.
백수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나에게 휴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모처럼의 약속도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만 류머티즘이 재발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무릎입니다.
이대로 술이라도 한잔 들이켰다가는 한 달 꼬박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하다 말했습니다.
친구는 머리를 자르고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건강보험 문제를 잘 해결했으니까요.
화를 내고 싶지 않지만 짜증은 납니다.
어쩌면 그렇게들 한 번씩 괴롭혀대는지.
이 나라는 사람을 정말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노예로 만들어 골수까지 우려먹으려는 듯합니다.
때론 너무 괘씸해서 중2 때처럼 아스팔트블록에다 가래침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다 뱉고 싶어 집니다.
이 가래의 주인은 당신이니 돌려드리는 겁니다.
나는 그때와 별반 달라진 구석이 없는 모양입니다.
혀 대신 손가락을 튕겨 침을 뱉고 있습니다.
다만 사랑스런 당신이 밟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아무것도 협조하지 않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제명해 주시겠습니까.
무거운 이름도 반납하고 이제 그만 깊은 바닷속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버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소 격양된 목소리셨습니다. 당신께서 한 마디 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못난 마음이 풀썩 가라앉습니다. 사랑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한 마디를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애꿎은 사람만 다치게 되겠지요. 아버지께는 다 잘 해결되었으니 걱정 마시라 했습니다. 괜히 놀란 마음을 아버지께 고한 제 잘못입니다. 그러나 창조주께 일르는 게 뭐 어때서요. 아버지가 아직 내 뒤에 서계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더디게 자라는 것 같지만 이 나라는 어쩐지 자랄 마음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안치환 님의 노래처럼 언제 술 한잔 사준 적 있답니까.
그게 벌써 언제 적 노래입니까.
갈수록 실수하기나 하지요. 어리석기나 하지요. 복잡하고 번거롭게나 만들지요.
멀뚱멀뚱 있으면 모기처럼 은근슬쩍 괴롭히고 갈취하기에나 바쁩니다.
이 공기가 당신 것입니까.
이 땅이 당신 소유입니까.
나에게 뭘 더 앗아가려고 이렇게 못살게 구는 겁니까.
내가 죽으면 그 책임 느낄 마음이나 달고 사십니까.
수천만 명이 나눠 가지면 그럭저럭 버틸만합니까.
일단 편한 대로 처리하고 문제 생기면 대신 일하게 만드는 구조.
똥 치우는 일.
그래서 돈을 주고 고용한다지요.
그런데 나는 왜 돈을 삥 뜯기면서 당신들의 똥까지 대신 치워줘야 하는 겁니까.
생각할수록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애당초 돈과 그것은 교환될 수 없습니다.
성립될 수 없는 부등식입니다.
이 녹슨 사슬이 어디 공단뿐입니까.
어디서나 봐왔고 겪어왔습니다.
이러니 도대체가 더 이상은 그 어디서도 일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코털만큼도 가담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딱하게도 나는 아직도 젊습니다.
부모도 살아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함부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살고자 한다면 간곡히 수도원에라도 들어가야 할 판입니다.
그래야 내가 온전히 삶에 감사하며 숨 쉴 것 같습니다.
자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