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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Oct 14. 2024

뜸(凸)




잠자코 있을 때에도 삶은 더욱 거세게 잡아당기려 하고 어딜 그렇게 자꾸 기어—

오른다.

누구는 놓으려고 애쓰는데.

내리려고 안달인데.

목적지가 다르다면 버스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실비보험료 상승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충동적으로 해지했다는 얘기.

소득이 없으니 모든 게 더없이 부조리해 보인다.


보험 따위 해지하고 하나님에나 가입하련다.

하나님 돈 필요 없잖아요.

필요할 때마다 지혜도 알아서 척척 공짜로 보내주고.


해지 상담원에게 다 죽어가는 목소리, 만사 귀찮다는 화법으로 말을 아끼도록 유도했다.

그래도 끈질겼다.

관록이 있으니 해지팀에 포진되지 않았겠나.

상대의 의도를 건너뛰고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을 높이는 일종의 더블 바인딩 수법을 알고 있다.

더블 바인딩은 본래 정신분열증에 관련된 용어인데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상대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법으로 사용된다.

예시는 직접 찾아보면 좋겠다.

어쩌면 아, 그때 당했구나, 또는 속아서 결혼했구나 같은 순간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보험을 해지하며 17년도부터 타 먹은 내역들을 살펴봤다.

타 먹은 게 좀 있긴 했다.

한직장에서 일하면서 새로 얻은 통증들.

계절처럼 돌아가며 아팠던 부위들.


마침 손가락과 무릎이 또다시 말썽이다.

아마 좀 더 추워지면 턱관절에도 이상이 올 것이다.


이젠 전기도 싫고 레이저도 싫고 약도 싫고 충격파도 싫다.

병원 자체에 이골이 난다.

태어나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그러니 올해만큼은.


... 그냥 솔직히 현대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안 든다.

덩달아 나도 마음에 안 들어진다.




얼마 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것이 있다.


소불고기와 맥주를 즐겨드셨지만 차와 뜸도 그만큼 좋아하셨다.


밤이면 손바닥에—凸(이렇게 생긴)—뜸을 뜨곤 하셨는데 손뜸은 손바닥을 전신으로 확장시켜 탈이 난 부위를 다스리자는 목적이지만 아무래도 손바닥 자체에 더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와 조상을 참고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무리 유익한 책과 콘텐츠가 지척이라 해도 요즘 드는 생각은 유전자 참고가 짱이지 않나 하는.

내 옷처럼 잘 맞고 역행보살도 된다.

어리석은 욕망더미 세상만큼 복잡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인간은 함께 살아야 한다.

기초가 부족한 현대인 혼자 살며 정보 따위에 휩쓸리고 망상하다가 삐끗하면 정신병 걸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정보는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데다 유익균은 흡수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신뢰도의 문제가 있다. 내속신뢰 내밖신뢰 외에도 확장도에 따라 믿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결국 본질에서 나온 부산물들이 형태와 이름만 바꿔가며 쉴 새 없이 떠돌 뿐인데 문제는 그 부산물들이 바람을 타고 가지를 흔든다는 것.

뿌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느낄 것인가 말 것인가.

양분 삼을 것인가 피톤치드를 내뿜을 것인가.

잘 감응하려면 대번에 분별할 줄 알아야.

언제나 뼈저림을 느끼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편 우리가 아무리 같다지만 너무 오래전 이야기는 아닌지.

고통과 대적하다 너무 많이 흘려버린 것은 아닐지.

부서져 버린 것은 아닐지.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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