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휘재 Oct 18. 2024

균탁 3




너무 많이 잤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래 누워나 있었다.

모기 이야기는 정말 그만하고 싶지만 안 할 수가 없네.

시월도 반환점을 돌았는데 아직도 돌아갈 줄 모르고 잠보다 더 깊이 점을 찍어대는 통에.


도톰한 이불을 반년만에 장에서 꺼냈다.

꺼낼 때는 몰랐는데 좁은 방안에 덮고 누워 있으니 좀약 냄새가 금세 방안을 가득 채우곤 이불과 피부사이를 이간질했다.


내일도 이불빨래를 해야겠구나.


그러면 오늘처럼 비가 온다.

온몸이 도로 진흙으로 돌아갈 모양으로 꾸깃꾸깃 뭉개진다.


아프다.

비가 온다는 것은.

씻긴다는 것은 아픈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염증이,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비가 염증을 떨구도록, 잘못을 뉘우치도록 등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염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느 목사인가 시인이 그랬다.

흙에 불안을 더하면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인간에게서 불안을 빼면 흙이 된단다.


창세기의 하나님은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니, 그것이 산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생기, 숨이 불안이니 또한 사람이, 삶이, 삶의 바탕이 곧 불안일 것이다.


머리로 따지는 순간, 해석하는 순간, 숨을 의식하는 순간 불안은 깃든다.

의식은 들숨 안에 무엇이 든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인간은 폐로써, 날숨으로써 한평생 그것들을 걸러 밖으로 내보낸다.

과정에서 수많은 생각 감정들이 일어난다.

그러건 말건 가만히 앉은 배는 쉼 없이 부풀고 쪼그라들며 신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들숨에 감사하기 위해,

들숨의 두려움 잊기 위해,

나는 눈뜨면 곧장 진흙 같은 커피냄새로 숨을 한 겹 감싼다.

괜찮다.

숨 쉬어도 된다.

살아도 된다.


커피를 내리며 기도했다.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을 집중했다.

심리적 시간에서 순간으로 진입하는 의식을 치렀다.

수많은 언화들.

별을 바라보는 것.

별이 나를 바라보는 것.


한동안 반대로 생각해 왔다.

영적 체험은 그토록 강렬했다.

설거지를 마친 고무장갑처럼 나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때문에 한낱 인간으로서 진실로서 신을 닮길 바랐고 언제나 그것과 일체된 삶을 갈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애초에 영이었다.

영으로서 인간을 살아보고 있는 것이었다.





뼈스캔을 하려면 정맥주사를 맞고 멀뚱히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에 병원 뒤로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젊은 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산책로에도 동네 숲길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이는 딱 두 명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모두 병원 안에 계셨다.

내가 아는 어르신들은 이른 아침 동네 숲길에 계시거나 병원 안에 계셨다.

아침에 숲을 걷고 점심 무렵에 병원에 드는지도 몰랐다.


얼마 걷지 못하고 벤치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불고 졸음이 낙엽처럼 쏟아졌다.

아픈 엄마보다 나는 더욱 피곤했다.


내가 아는 어르신처럼 숲을 걷다 말고 순순히 병원에 들었다.

마침 접수처를 바라보고 있는 삼인용 인조가죽 소파가 벽에 쩍 달라붙어 있었다.

엉덩이가 푸욱 꺼졌다.

어쩜 이리도 아늑한 순간.


마음도 서서히 감겼다.

엄마도 피곤했는지 나랑 코를 번갈아 골며 잤다.

이순간이라도 영원했으면. ㅣ


엄마는 평소에도 둘레길을 많이 걸어서 좋다고 말했지만 산책로를 걷자고 제안하지는 말걸 그랬다.

엄마랑 병원에 같이 오지는 말걸 그랬다.

엄마가 아프지는 말걸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뜸(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