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네 까페에는 빠테이블 위로, 와인잔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나무 진열장 앞으로 작은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주문할 메뉴를 살피다 보면 반드시 눈에 걸릴 수밖에 없는 요소의 액자 속에는 그 고장의 비경이 붓이 지나간 듯한 맥으로 담백하게 심겨 있고 그림의 수면 아래로는 의미심장한 글자들이 물고기 떼처럼 모여있었다.
가슴에... 수평선 하나 긋고 살자
오늘의 추천커피처럼 매일 달라지거나 엊그제와 똑같기도 한 삼춘 맘대로의 좌우명 같은 것이었다.
❝작년에는 뭐였어요?❞
❝ㅎ. 까불지 말자.❞
벌써 십 년도 전이니 삼춘 나이 쉰 몇의 심사였을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더욱 흔들리겠구나, 힘들어지겠구나, 추해지기 쉽겠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같은 예감들이 차츰 저마다의 색을 갖춰 입고 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삶의 모습들이 나의 두피 밖으로도 조금씩 비꾸러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벌써부터 대비한다거나 앞서 적응해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이 나에게 어울리는 시기를 만들어—시간의 고무줄을 주욱 늘려—충분히 준비토록 배려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나약한 존재임을 알 테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미리 들어야 할 건 연금이나 보험 따위가 아니니까.
그것들이 시도때도 없이 무대에서 까불대더라도 실상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쯤은 경험이 없더라도 자명히 안다.
살면서 제대로 갖추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고 믿는다.
남자든 여자든 존재가 무르익고도 음양을,
빛과 어둠도 알맞게 쓸 줄 모르니 볼썽사납고나.
생각을 다스리지 못해,
알량한 지식에 이끌려,
우상은 너무나 쉽게 탄생하고,
또 너무 빠르게 마음을 차지하는고나.
환상이라 말하면 더욱 화를 내겠지.
그대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될 테니.
자의식을 위협받게 될 테니.
남을 흔들려는 만큼 스스로 흔들려야 할 텐데.
몹시 흔들려 공명하다 뇌가 담긴 유리컵이 깨어져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 쓰이는 글일 텐데.
잘도 버티는구나.
얼마나 단단하길래.
얼마나 사랑스럽길래.
또한 얼마나 아프게 될는지.
신식 학문을 좋아한다면 더욱이,
우리에게 방향이 어디 있나.
진보가 어디 있고 퇴행이 어디 있나.
모르는 소리를 마이크를 쥐고, 쉰 목으로 갈갈 외치면 진실이 되나.
저주받은 사람 탓하면서도 똑 닮은 그대야.
그대야 말로 자기 안의 잔나비를 보지 못하는구나.
언어는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바치는 욕망.
가련하고나.
죽기 전에 죽지 못한 사람 가련하다.
숙변들이 머리까지 차올라 어쩌지를 못하는고나.
동화되었고나.
가슴이 꽉 막혀 있고나.
열이 오르는 까닭이 꽉 막혀서 인 줄을 몰랐구나.
태동인 줄 알았구나 열망으로 느꼈구나.
그것은 삶의 박동이 아니다.
진실의 울림이 아니다.
생명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고통과 쾌감의 울부짖음이 아니다.
열차의 기적소리를 자신으로 착각하지 마시어요.
아... 적다 보니 죄스럽구나.
미안해라.
그러니 표하려는 누구든지 첫째로 미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