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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휘재 Oct 22. 2024

자두




홀로 냉장고에 남겨진 자두 하나를 꺼내 삼키며 생각했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그새 잊어버렸어


커다란 자두 씨 때문이었을까

자꾸 뭘 집어먹으려는 혓바닥이 매스꺼웠나


닁큼 받아낸 딱딱하고 끈적한 핏덩이는

기억났어

구멍에서 자랐거나

아니면 구멍을 만들어버린 세포를 조심해야겠다는 아무런 생각이었어


안구가 그렇고

혀와 이빨이 그렇다고


안 봐도 되는데

안 먹어도 되는데

안 말해도 되는데


감각이 시험이겠으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란

신경을 마비시켜 주세요

이제 그만 불구가 되게 해주세요


혀를 삼켜보자

눈으로 이빨을 깨물어 보자

그런 소리가 자꾸 들어와

오토바퀴들이 귓속을 질주해

죽이고 싶고 또 죽여버리고 싶어

할머니가 듣지 못하게 된 이유를 물었어야 했는데


감각을 위하기로

향하기로 주인이 홀랑 돌아서면

나는 병이 들어

영혼이 병들고 그다음 몸이 병들고 감각마저 마비 돼버려


내가 자라면서

엄마가 없어지는 거야

엄마가 없어지면서

내가 마비 돼버리는 거야


콧속에도 혀가 자라곤 했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댔어

웃기지도 않았어

그 어린애 속에 포도가 자라는 게 너무 아파서

익기도 전에 손톱으로 잡아떼곤 했어

톡 하고 눈물이랑 똑같은 게 쏟아져 나왔어

그 통렬한 주파수를 기억해

숨쉬기 위해 떼어져야 했던 모든 운명을 기억해

나는 영원히 익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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