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스케줄에 쫓기며 건물 두 동을 연결시키는 유리관을 쉴 새 없이 오갔다. 그 찰나에만 유일하게 햇볕이 눈에 들었다. 통로를 지나며 볕 속을 걸을 때마다 모처럼의 나들이가 병원이지만 기쁘다고 생각했다. 유리관 밖으로도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해를 쬐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봤다. 솔부추, 파프리카, 오이, 두부, 고추, 얼갈이배추, 파, 마늘... 나는 휴대폰으로 주문하기 어려운 연근을 하나 집었다.
"토마토 하나 안 살래?"
"너무 비싸요. 비쌀 때는 통조림에 들은 걸로 국도 끓여 먹고 파스타도 해 먹으니 괜찮아요."
엄마는 통조림은 먹지 말라고 하더니 그러면 방울토마토라도 사라고 권했지만 그마저도 온라인에 비해 턱없이 비싸서 관두었다.
"이것만 해도 들고 가기 무겁겠어요."
10.07. 엄마랑 장을 보고 버스 두 정거장 남짓한 거리를 무거운 비닐봉투 손가락에 걸고 걸었습니다. 손가락을 번갈아 걸면서도 마음은 하나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 기분이 문득 어떤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녀의 동네에서 데이트를 하고 함께 장을 봐줄 때, 적어도 나는 그녀보다 키가 컸으므로 높은 진열대에 박힌 두루마리 휴지도 꺼내줄 수 있었고 그녀보다 단단했으므로 콘서트 내내 무등도 태워줄 수 있었습니다. 한 손에 두루마리 휴지 뭉치를 가볍게 들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갑자기 왜 무한도전 로고송을 흥얼거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깔깔 웃으며 자꾸만 자꾸만 또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며칠 뒤 결국 방아쇠수지증후군이 올라와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 그치만 오는 길 내내 힘들다는 생각은 전연 들지 않았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짧고 눈부신 기적은 긴 슬픔 같은 것들과 한 묶음으로 포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을 장바구니에 잘도 주워 담는다.
엄마는 솔부추를 무치고 나는 냉동실에서 그만 탈출할 기회를 주고자 열빙어 요리를 제안했다. 엄마는 열빙어를 몰랐고 시샤모라고 일컬어주어도 몰랐다.
"엄마가 예전에 종종 해주던 거, 그 생선 이름이 뭐였더라... 어, 맞다 양미리. 양미리 같은 거야. 아이슬란드산이라 깨끗할 거야. 알도 꽉 차있어."
그냥 생선이 먹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헤엄치던 바다였으므로 그런지도 몰랐다. 그곳은 바다와 염도가 똑같다고 하지. 너무 신기하지 않아? 그런데 암환자는 체내 염도가 많이 낮대. 그러니까 소금 좀 많이 먹자 엄마.
아닌가.
어떡해야 염도가 올라가? 아닌가. 건강해지면 염도도 올라가겠지. 얼른 얼갈이랑 두부 넣고 된장국 푹 끓이자. 엄마 심장을, 염통 망가뜨린 새끼 누군지 알아. 그 백신 만드는 놈들 말이야. 선전하는 놈들 말이야. 맞죠 하나님 맞죠. 평생 튼튼했던 심장. 앓을 리 없는 심낭염에 덜컥 걸리고는 모든 게 부서져 무덤이 됐어. 머잖아 그게 암덩이가 됐을 뿐이고. 나는 그딴 거짓말 따위 한 차례도 믿지 않고 저항했단 말이야. 사람들 눈치 보면서도 끝까지 개겼단 말이야. 근데 나는 백신도 안 맞았고 심낭염에 걸린 것도 아닌데 가슴은 왜 이리 아픈 거야. 이 무덤은 또 뭐고.
엄마는 열빙어에다 직접 담근 고추장과 고추, 마늘을 넣어서 도리뱅뱅 같은 걸 만들었다. 매콤하고 알이 꽉 차서 고소했다. 솔부추 무침도 아삭하고 고소했고 파프리카 샐러드도, 된장국도 고소하기만 했다. 참기름은 어디에도 들어간 곳이 없었다. 이마 주변에서 짜인 냄새 때문에 코를 자꾸 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