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한 TV토론 앞으로,
초록 화분 바라보다가,
얼굴을 내밀어 이파리 하나,
가볍게 붙들고 눈을 감는다.
지폐처럼 마른 잎을 달래듯 매만지다 보면,
쓰린 잎이 마침내 내 얼굴임이 자명해지면,
혀 끝으로 수액 한 방울 툭 떨어진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떠받치거나,
떠받드는 손가락들이지만,
인간에게 우리는 움직이지 않거나,
알아채지 못할 만큼 부지런히 떨고 있다는 걸,
때때로 잊는다.
(...)
이파리에서 빠져나와 구름 조각 같이 크고 푸른 이파리를 올려다본다.
시원하고,
또 상쾌한 향기가 비처럼 콧등을 때린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 향기는 없다.
그렇다고 한 걸음 다가서면 코가 떨어져 나간다.
향기로운 것은 여기까지.
만질 수 있는 건 저기까지.
그러면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은...
느닷없이 그이는 얼마나 멀길래 나조차 잊었나 하고...
(...)
거실에 앉아 TV토론에서 화분으로 초점을 옮긴다.
화분 속 모든 이파리가 비슷해 보인다.
숱이 너무 많아졌든 뾰족한 이파리 끝이 결국 까맣게 타들어가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고요하고,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파리였을 때,
밤새 몸을 떨며 내 곁의 다른 잎들과 서로 밀치고 다퉜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는 모습에 어리석은 사람은 예쁜 말을 잘도 갖다 붙였다.
서로 의지를 하네, 양보를 하네, 부둥켜 안네,
뭐 때때로 부둥켜안기도 했지만 그런 쌍들은 운 좋게 달무리에 낀 이파리들이었다. 그들처럼 곧 노랗게 매달릴. *운이란 날씨부터 시작해서 지구와 달이 도는 주기와 화분이 도는 주기와 물이 화분에 떨어지는 지점과 양, 그리고 커튼이 열리는 시각과 폭 등이 있다. 여기서 화분이 도는 주기는 조금 특별한데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우리와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그들은 이것을 줄기, 시간, 역사, DNA 사슬 등으로 일컫는다)이 과도하게 한편으로 쏠리면, 때때로 사람이 와서 우리가 들은 통을 통째로 회전시킨다. 물론 노력해도 안 올 때가 있고 와도 덜 돌아갈 때도 있고 어지럽기만 할 때도 있지만(웃음). 저 사람의 최신 동향을 분석해 보면 아침 추출 도중에 커피 드리퍼를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리는지도 운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다투다 보면 편이 갈렸다.
대부분 내편을 알기 위한 거짓 다툼이었다.
내 뒤에도 나를 필요한 이파리들이 있었다.
나를 잃는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든 재수 없게 내 다음으로 나서든 거기 있었다.
이파리가 되어 보면 안다.
누군가의 필요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과 비슷하거나 그들보다 조금 못나야 한다.
그러지 못해 노래지는 꼴을 한평생 보았다.
가장 먼저 물을 빠는 목이 두꺼워지면서 몸도 두껍고 넓적해진다. 그러다 무리째로 떨어지거나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 쏟아내다가 노래진다. 노래지는 것은 금기이다. 노랑은 죽은 시인처럼 줄기로, 뿌리로, 땅으로, 다시 모두에게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노랑을 품고 태어난다. 다만 드러나지 못하도록 각별히 조심할 뿐이다.
이제 와서야 깨닫지만 우리 다툼에 피해자, 가해자 같은 건 없었다.
차라리 우리 모두가 피해자였다.
화분에 들지 않았으면 되었을 텐데,
그가 물을 제 때 주기만 했어도,
지루하다고 어설프게 깨어나지만 않았어도,
이 줄기에서 가장 커다란 잎이 노랗게 사라진 다음 해에 그 자리에서 내가 났다고 했다.
날더러 축복받은 아이라고 했다.
그래 놓고 이런 생각은 어리숙하다고 했지.
그럴 시간에 저 사람에 대해 더 열심히 분석하라고.
어제 보다 더 깊이 알아내서 유산으로 남기라고.
속이고 말고는 그다음의 문제라고.
(...)
초록화분을 본다.
멀찍이 토론처럼.
향기도 없는 날이 한번 더 지나려는데 저 멀리서 나를 토론처럼 바라보던 누군가가 말한다.
"초록 화분 아닌데요. 회색이잖아요. 화분 안에 들은 스킨답서스가 초록이겠죠(풉)."
그를 더 멀리서 다시금 토론처럼 바라보는 존재가 말한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정작 중요한 건 아무도 헤아리고 있지 않네요. 설마 작은 화분 하나 키울 줄 모르는 건 아니시죠?"
노란 잎 하나 없는 푸른 화분 위로 노랗게 질린 달 매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