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도시어부 프로그램에 빠져 살았다. 지금도 설거지를 할 때면 꼭 틀어 놓는다. 최신화는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무척이나 손해 보는 느낌이라 지난 회차를 돌려 본다. 시즌1부터 총 200회차가 넘기 때문에 어떤 에피소드를 틀어놔도 낯설다. 도시어부에 꽂히기 전에는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를 즐겨 봤다. 두 프로그램 모두 전국을 돌아다닌다. 나는 랜선여행이 고픈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김영철 배우님이 낯선 동네를 걷고, 거기서 만난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곧잘 할아버지가 떠올랐고—같은 이북 출신이신 데다가 목소리, 풍채도 비슷하다—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들이 가라앉곤 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는 외출을 삼가는 편이었고 인기 없는 TV프로그램들에게 시간을 지불하고 위안 따위를 얻었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는 날들이 며칠이고 이어졌다.
약정기간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올해 월드컵이 끝나면 TV를 없앨 거다. TV는 처음부터 플러그가 뽑혀 있었다. 앞서 얘기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작고 얇은 태블릿으로 시청했다. TV를 켠다는 것은 뭔가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느낌이라 특별히 집에 손님이 와서 요청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틀지 않는다. 1인 가구 치고 TV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나는 원래도 TV는 거의 보지 않고—더욱이 드라마는 안 본다. 내 인생 마지막 드라마는 약 12년 전에 방영된 인생은 아름다워이며, 이마저도 그 당시 만나던 사람과 모텔방에서 정해진 시간에 강제로 시청해야만 했다—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는 타인을 경멸하는 쪽인데 나도 변했는가 요즘 들어서는 소파에 드러누워 최강야구를 챙겨 본다. 작금의 프로야구에서 누가 홈런을 잘 치고 삼진을 많이 잡는지 같은 건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최강야구를 챙겨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지금은 은퇴한 선수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강야구는 은퇴한 선수의 말로를 지켜보면서 세월의 무상함 따위를 느끼자는 취지가 아니다. 선수들은 각고의 노력으로 매 경기 진심을 다하는데 그 기량이 현역 시절 못지않다. 스포츠 선수라는 직업 특성상 나이로 인한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들은 어쨌건 프로였고 나름의 노하우로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고, 승리한다. 그들은 결국 프로팀과의 경기에서도 이길 것이다.
도시어부도 최강야구도 같은 PD의 작품이다. 추측하건대 그는 나와 같은 세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일 거다. 출연진이나 BGM, 그밖에 정서들이 딱 찝어 나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시청자를 특정해서 철저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이라는 느낌, 위화감이 없다. 고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남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그리고 그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가 많다. 좋겠다. 그런 거. 내 정서는 평생 한 사람에게도 적중하기 힘들 것이다.
도시어부를 보던 어느 날 버킷햇을 덜컥 사버렸다. 나는 낚시를 갈 거다. 낚시를 갈 거니까 사는 게 아니라, 샀으니까 가는 거다. 이런 식의 메커니즘은 일상을 깨부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때 내가 모르는 나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나는 TV를 보는 것만으로는 안됐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정수리가 간질간질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던 걸 거다. 예전 같으면 부킹닷컴에 들어가 높은 별점을 찾아다니거나 비행기표를 먼저 끊었겠지만 나는 겨우 모자 하나를 샀다. 이만하면 많이 참작된 거다. 어쨌든 나는 낚시를 가게 되었고 참돔, 감성돔처럼 멋진 녀석들을 낚으리라 각오를 다졌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낚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일 평생 딱 한 번 있었던 배낚시는 파도에 드러누운 채로 끝나 버렸으니까.
때마침 나에게는 낚시 유경험자, 무려 주꾸미 낚시 출조 경험 3회에 달하는 멋진 친구가 있었다. 주꾸미 낚시는 좋은 선택이었다. 거창하게 채비를 갖출 필요도 없고, 다른 고급어종 낚시에 비해 뱃삯도 저렴했다. 주꾸미. 킬로 당 3만 원 하는 주꾸미. 언제부턴가 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주꾸미. 나는 장바구니를 비웠다. 주꾸미를 얕보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우리는 적당한 날짜를 조율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계획대로, 한 사람의 바람대로 순순히 움직여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고동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든 언젠가든 함께 갈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쓸쓸한 혼자 보다야 둘이 낫다. 셋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 된다. 또 함께 낚시를 간다면 내가 못 잡더라도 친구가 잡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고 내가 친구 기분을 상하지 않게, 그리고 극진히 대접한다면 몇 마리 얻게 될 수도 있다.(아니다)
흐지부지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늦은 아침을 차려 먹던 중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 녀석은 내 고동의 끈을 함께 잡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낚싯배와 숙소를 예약하고 그밖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모든 준비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머리는 어디 모서리에 부딪친 것처럼 핑핑 돌았지만 웃음이 났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뇌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든 문제의 순서를 정하고 틀림없이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연안부두였다. 항구 앞 노포 같은 낭만은 없는 동네였다. 밴댕이 회무침 거리라는 이정표를 따라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모둠회를 시켰고 민어, 병어, 홍어, 전어, 밴댕이가 썰어져 나왔다. 회 종류 별로 어떤 소스를, 어떤 순서로 찍어 먹어야 하는지가 식당 군데군데에 붙어 있다. 그런 식당이었다. 나름의 규칙이 있고, 적어도 손님은 그 규칙대로 한 번은 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당이 오래도록 영업을 할 수 있는 건 그 규칙을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집과 아집은 결국 이타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식당의 두 번째 손님이었고 첫 번째 테이블은 하릴없이 받은 예약 손님이라고 했다. 그만큼 동네는 조용했고 기운이 없었다. 나이 지긋한 사장님께서는 왜인지 우리에게 소주 한 병을 거저 주셨다. 사장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이 식당의 규칙이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괜히 가게 한 바퀴 둘러본다. 보이지 않던 오래된 동양화, 조형물, 사진들이 나타났다. 사장님은 먼 테이블에 앉아 손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사장님과 각자의 테이블에서 틈틈이 몇 마디를 나누었고 급기야 흑산도 홍어 애를 먹게 되었다. 땀이 났다. 나는 수산시장에서 잠깐이지만 홍어를 손질하는 일도 했었다. 홍어가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삭혀지는지 잘 알았다. 그러나 모둠회에 들어 있던 홍어회는 전혀 삭히지 않은 생물 그 자체로 톡 쏘거나 역한 맛은 전혀 없었다. 애는 싱싱해 보였고 이미 내 몸은 소주 2병을 흡수한 상태였다. '없어서 못 먹는다!'라고 주장하는 음식들은, 있더라도 제발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처음 맛보는 홍어 애는 최선을 다해 표현하자면 크리미하고 리치하고 달큼하면서도 녹진했다. 잘 해먹지 않지만 파스타를 해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랬다. 그리고 내 간은 어떤 빛깔일지 문뜩 궁금해졌다. 부디 누군가가 입맛을 다실만큼 건강한 빛깔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행한 친구를 포함한 얼마 남지 않은 내 친구들의 공통점은 모두 크록스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크록스를 신고 외출하자면 제발 그것 좀 신지 말라고 성을 내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크록스를 즐겨 신는 사람은 합리적이고, 멋을 알고, 잘 생겼고, 키도 크다.(아니다)
글을 쓰면서 사진이 떡하니 보이니 갈피를 못 잡겠다. 자꾸만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자고 만든 매거진이니 손가락이 키보드에 뭘 누르든 내버려 둔다. 그마저도 안 내키면 사진을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이건 가벼운 블로그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연안부두는 말 그대로 부두인지라 일말 보이는 바다도 작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서해는 서해다운 운치가 있다. 물색이 탁하고 쓰레기가 떠밀려와 있어도 그 나름의 정서는 그런대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조니 뎁이 그랬다. 사람은 약해서 우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강했기 때문에 우는 거라고. 나는 끝내 울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별로 강하지 못했나 보다. 강해져야 한다고, 부모님조차도 내게 말해준 적이 없다. 십수 년 전 음악이 전부인양 살았던 시절, 어째선지 이름도 얼굴도 선명한 진정한 인생의 록커 기철이 형이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해줬을 뿐이다. 나는 그 덕분에 빵집 알바를 관두고 첫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나의 목적은 주꾸미 낚시이고 출조 시각에 맞추려면 새벽 네시 반에는 일어나야 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