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나의 아침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오가며 쓸데없이 많이 달린 창문을 하나씩 밀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다음 푸시업을 10회, 유튜브를 켜고 건강체조를 따라 한다. 세수를 하러 가기도 전에 마시는 커피는 어떻게든 몸에 무리를 줄 거였다. 나는 십 년째 아침마다 부운 눈으로 커피를 갈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통증이 생각이 날 때마다 오른쪽 어깨에 파스를 붙였다. 집을 나서면 화가 났다. 실제로 내 다리는 점점 무겁게 굳어갔고 종종 그런 다리로 보도블록을 걷는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예민하다는 말들은 화를 내기에는 너무 보잘것없었다. 그 무렵 일기에는 화장실 바닥에 그것들의 모가지를 발로 짓눌러 구속시킨 뒤 철수세미로 그 얼굴을 감싼 비늘 같은 것들을 뻑뻑 문질러 뜯어내버리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커피 보관통을 열고 원두 냄새를 맡는다. 한 번에 500그램을 주문하면 커피값을 꽤 아낄 수 있었다. 하루 한번, 한 번에 20그램씩. 꼬박 한 달을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주문한 날에서 멀어질수록 맛이 없었다. 커피를 남기는 날들이 늘어갔다. 커피는 진작 산폐 했을 것이다.
트렁크 바람으로 커피를 들고 옥상에 오른다. 햇볕이 따가운 건지 눈곱이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구가 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오직 가을 하나의 계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봄은 꽃가루 때문에 환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여름은 덥고 끊임없이 모기와 싸워야 한다. 겨울은 해가 너무 짧다. 가을은 너무 짧다.
세수를 하고 볼일 마치면 책상 앞에 앉는다. 첫 음악은 항상 시규어 로스의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 앨범이다. 경쾌한 몇 곡이 흐르는 동안 아침일기가 쓰여지고 이내 잔잔한 곡들로 바뀐다. 그 무렵에 오늘과 같이 브런치에 접속하면 새로운 글 한편이 시작되고 내키지 않으면 aimee mann의 곡을 틀고 독서를 한다. 여기까지가 기상 후 한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이다. 귀찮은 과제물은 미련 없이 제출했고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아직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아빠가 보내준 노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중에서도 2악장, 로망스라는 이름이었다. 아빠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게 맞다. 아빠의 차 안에서는 항상 클래식이 들렸다. 아빠는 운전을 하면서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얼굴은 늘 일그러져 있었다. 클래식은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주술 같은 거였다. 나는 서울에서 2시간 떨어진 곳에서 클래식 작곡을 배웠다. 음감이 뛰어나고 피아노도 잘 쳤지만 클래식은 지루했다. 나는 오로지 불행에만 몰두했고 그것을 오선지에 옮기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클래식은 변질된 포교처럼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나고 따라다녔다. 할아버지의 서재에는 당시 나보다 키가 큰 전축과 무수한 클래식 음반들이 자신들의 위엄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주로 하이든이나 말러의 교향곡들이었다. 방학이면 찾아오는 손자가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길 바란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그런 인물사전에 나올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에게, 너도 쉽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고 부모의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젠가의 설움을 조금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면에서, 개인적인 불행을 대비한다는 면에서 또 다른 불행이었다. 불행은 분할된 만큼 줄어들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술을 몇 병 더 샀다. 계산원이 침울한 건 날씨 때문이었다. 그런 날씨에도 몇몇들은 바닷가 광장 무대에 오른 여자의 구호에 맞춰 흐느적거리며 율동 같은 걸 따라 하고 있었다. 달밤에 체조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유된다면 광장은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요동치는 바다에서 길고 두꺼운 촉수가 튀어나와 삽시간에 그들을 쓸어갈지도 몰랐다. 나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 광장 쪽을 돌아봤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TV는 유명 연예인의 죄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대신 테이블 구석에서 전기포트를 찾아 물을 끓였다. 거기엔 누군가 장난으로 양말을 삶았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을 떼어낼 필요가 있다. 그때부터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많은 다리로 시커먼 바닥을 천천히 더듬으며 느리게 기어가는 그것을 상상한다. 빨판이 바닥에서 떨어질 때마다 나는 구겨진 아빠의 표정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 그것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수온이나 물때, 날씨와 같이 특정한 조건이 갖춰져야만 겨우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색을 자주 바꿨지만 친구는 채비를 바꿔가며 그것을 밖으로 잘 유인해냈다. TV는 어느새 여성 록커가 볼을 차고 있다. 밤새 창밖으로 사람의 울음소리 같은 게 뜨문뜨문 들렸다.
안개였다. 주의보가 떨어지면 출항을 못할지도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와달라는 전화였다. 차라리 취소가 되어서 제대로 잠을 청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안내 문자의 지시대로 찜질방이 영업 중인 건물 옥상에 주차를 했다. 옥상 저편에 앉아 있던 주차 관리인이 왜 자신의 말을 안 듣고 먼 쪽에 차를 대느냐고 성을 냈다. 옥상을 내려가는 출구가 그쪽이 아니었다면 그를 발견조차 못했을 만큼 짙은 안개였다. 출조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며 지난밤을 생각한다. 어제 먹고 남은 회 몇 점이 숙소 냉장고에 덜렁 남아 있을 터였다. 그것을 발견한 하우스키퍼의 표정을 떠올리자니 덩달아 표정이 일그러졌다.
항구에 정박된 무수한 배 가운데 유일하게 불이 켜진 배였다. 출항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을 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 밖으로 나와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안개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친구는 능숙하게 낚싯대에 채비를 연결했고 나는 선실로 내려가 낡아 빠져 제대로 기능이나 할지 의심되는 구명조끼 더미에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것 두 개를 집었다. 배는 어떤 예고나 예행 없이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출시각이 한참 지났음에도 주위는 어두웠다. 어쩌면 배가 어제의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땅을 찍어야 합니다. 이 감각을 아시겠어요? 이게 땅이에요."
봉돌의 안착으로 가늠하는 땅의 감각은 조류에 의해 쉽게 무산되었다. 나는 나름의 땅을 가정하기도 하며 땅을 알아채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손목을 크게 꺾어 황금색 에깅에 부자연스러운 율동을 주며 거기 있을지도 모르는 주꾸미의 모습을 상상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은 낚시에서도 그랬다. 첫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고 아기 손바닥처럼 작고 새하얀 주꾸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주꾸미가 달린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50그램 만큼의 변화는 육체적인 감각으로는 알아채기 힘든 종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