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줄이 배 안쪽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낚싯줄을 바다에 내린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처음 겪는 통제할 수 없는 사태에 어쩔 줄을 모르고 친구에게 이것 좀 보라고, 잠긴 드랙이 풀려 나간다고 흰소리를 해댔다. 이게 주꾸미일 리가 없다. 이건 최소 8짜 광어다. 이 가녀린 주꾸미 전용 낚싯대는 광어의 무게를 버텨낼 수 없다. 1만 원을 주고 빌린 낚싯대이지만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적어도 10만 원을 보상해야 할 터였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 여기저기에서 연쇄적으로 터졌다. 축제였다. 나는 드랙을 풀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람들은 어떤 기미도 없었다. 나는 짧게 두 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드랙을 잠근 뒤 릴을 감으려고 애썼다. 낚싯대가 부러질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드랙을 풀었다. 내 인생 첫 광어와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축제가 시작됐는데도 주위는 여전히 잠잠했다. 나 또한 아무렇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어떡하지. 이제는 드랙을 잠글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근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던 사무장 아저씨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밑걸림이었다.
"당기라니까."
"팍! 당기라고요."
"팍! 팍!"
"아~이 참..."
나는 초등학교 강당의 단상에 서있다. 전교 학생들이 나를 올려다 주목하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단상에 홀로 서있다.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선생 하나가 혀를 차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쯧. 사내 새끼가 패기가 없어."
나는 왜 고작 강당에 들어와 노는 꼬마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단상에 서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왜 수련회 때마다 유행하는 춤을 준비하고 거기에 더해 뜬금없이 무대로 끌려 나와 게다리 막춤을 추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몰랐다. 왜 매 학년마다 내 이름이 쓰여진 임명장을 받아 들어야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할 줄 아는 게 없어."
"야야, 내려와 내가 할게."
"어휴~ 남자가 이것도 하나 못..."
나는 조금의 주목만 받아도 귀가 빨개졌다. 개중에 누가 '쟤 또 귀 빨개진다.'라고 말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귀는 빨갛다 못해 피멍처럼 새카매질 지경이었다. 고무 패킹 수명이 다 된 압력밥솥처럼 귓구멍에서 연기가 삐져나오면서 피식피식 같은 소리를 내었다. 머리가 곧 뻥-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사람의 머리는 그런 식으로는 터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걸까. 지들 맘대로 나를 도마 위에 올리고 뾰족한 칼로 내 배를 가른다. 눈살을 찌푸리더니 흙바닥으로 내던진다. 나는 그 얼굴에다 시원하게 먹물 한 번 쏘지 못하고 죽어갔다. 고양이 목숨보다 많은 죽음이었다. 너라면, 너 정도라면,..., 사람들은 대체 내게 뭘 본 것이고 뭘 기대했길래 나를 이렇게 내동댕이치고 조롱하는 걸까. 나는 차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생이 될 무렵 나는 보호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다.
오전 아홉 시가 넘어가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지만 귀는 차가웠다. 안정기가 찾아왔다. 낚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첫 밑걸림 이후로도 두 번을 더 해 먹었다. 칠천 원짜리 초보자용 채비 세트에 들어 있던 재료들을 죄다 바다에 헌납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지금 누구보다 주꾸미를 많이 잡고 있다고 확신했다. 밑걸림의 원인은 '애자'라는 채비 때문이었다. 애자는 봉돌만큼 무게가 있고 문어처럼 생겨 먹은 것이 영락없이 수초나 돌 사이에 잘 끼일 거였다. 하지만 애자를 제거한다면 사라진 무게만큼 채비는 가벼워진다. 땅의 감각과 주꾸미를 알아채려면 염력 같은 걸 준비하는 것처럼 더욱 예민해져야 할 거였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갈아 끼울 채비가 없다.
나는 애자를 떼어내고 가장 작은 봉돌과 황금색 피래미 같이 생긴 최후의 에기를 낚싯줄에 연결했다. 매듭 묶는 방법을 연습하고 온다는 걸 깜빡했지만 신발끈을 묶을 줄 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낚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두려움을 꼽자면 높은 너울에 배가 뒤집힌다거나 뱃멀미 같은 걸 떠올려야 하지만 나는 끊어진 채비를 다시 연결하는 일이 먼저였다. 두려움은 항상 작고 끈질겼다. 나를 쪼아대는 건 창밖 전신주에 앉은 비둘기가 아닌 어디서 왔는지 모를 모기였다.
바닷속 환경을 가정하고 나름의 소설을 쓴다. 예민, 꼼꼼, 민감, 섬세, 세심,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이름보다는 그런 것들로 불렸고—납득할 수 없었지만—그런 것이 요구되는 일들을 잘 해내었다. 내 손가락은 낚싯대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해 바닥을 더듬더듬 짚어나가고 있었다. 황금색 손가락이 부드럽게 땅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땅이 움찔할 때마다 지각은 흔들리고 놀란 주꾸미들이 손가락을 공격한다. 말도 안 되지만 주꾸미가 올라옴으로써 말처럼 되었다.
배가 포인트를 옮길 때마다 사무장은 그 자리의 조과를 확인하러 돌아다녔다. 머문 자리에서 오분간의 조과를 확인하고 성과가 없다면 다른 포인트로 옮겨가는 식이었다. 점심에 가까워질수록 주꾸미의 활성도는 떨어진다. 앞으로는 주꾸미를 낚는 시간 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나는 어느 포인트에서든지 간에 보란 듯이 그것들을 낚아냈다. 사무장은 내가 낚는 것을 확인하면 그 포인트에 좀 더 머물렀다.
사람들은 모두 고급 낚싯대와 휘황찬란한 채비를 뽐내고 있다. 주꾸미 낚시를 처음 온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그런데도 주꾸미는 내 바로 앞 수면 위로만 모습을 비추었다. 초심자 버프가 너무 길다. 이건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라 내 감각이 남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기 충분한 현상이었다. 봤는가? 또 올라오고야 마는걸.
'운칠기삼이지.'
'낚시는 자리야.'
흔히 낚시를 그렇게 표현하지만 낚시 초짜가 정의하는 낚시란 상상력이었다. 적어도 오늘 이 배 안에서만큼은 누구의 말보다 믿을 만한 거짓말일 거였다.
주꾸미들은 쭈꾸미라기엔 너무나 작아서 쪼꼬미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내가 낚아 올린 주꾸미들은 옆사람 것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친구는 에기를 두 개 달고 낚시를 했다. 그 때문인지 한 번에 두 마리를 낚는가 하면 씨알도 제법 큰 편이었다. 낚시는 각자의 경험과 고집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는 황금색 에기 하나만을 달았지만 훨씬 많은 손맛을 봤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나는 작은 주꾸미의 반응 또한 알아챘기 때문일 거다.라고 추측하는 편이 '작은 개체는 황금색에 반응한다'라는 가정보다는 일리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배가 고프다. 졸리다. 씻고 싶다. 햇볕이 너무 따갑다. 마침 돌아갈 시간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배를 몰고 간 건지 돌아오는 내내 난간에 팔을 얹고 얼굴을 파묻었다. 수업종이 몇 번 울렸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 선생도 나를 포기한 것 같다. 나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임명장이었다.
쿵—. 교통사고처럼 무언가가 빠르고 강하게 낚싯대를 들이받았다. 입질이었다. 주꾸미는 에기에 올라타기 때문에 그 순간의 무게감만 있을 뿐 입질이란 것이 없다. 방금의 충격은 '갑'이라고 불리는 갑오징어나 무늬오징어일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은 이따금 갑을 낚아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무장은 "갑~!"이라고 외치며 시선을 강탈해갔다. 주꾸미를 잘 낚지 못하던 사람들은 어쩌면 주꾸미가 아닌 갑을 낚기 위해 승선한 사람들 인지도 몰랐다. 저걸 잡았어야 했구나. 저게 더 멋있네. 아쉽게도 내 낚시는 이미 끝났다. 친구는 이번에도 갑을 못 잡고 갈 순 없다며 날더러 갑을 잡아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일단 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생김새라도 알아야 얼마의 수심에서 어떻게 헤엄을 치고 있을지, 그걸 어떻게 꼬셔내야 할지 나름의 가정을 할 수 있을 거였다. 갑으로 추정되는 그것은 뺑소니처럼 허탈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났다. 엉덩이가 가벼워진 탓에 자주 탈이 났다. 기억은 단순하고 일방적이었다. 침잠하기 위한 대가는 비싸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가 하면 또 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