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막

설거지(랄)

by 자진유리


혼자는 에너지 규모(섭취량과 배출량)도 적으니까 쌓아놨다가 한 번에 하는 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부러 일감을 쌓아둬야 라디오라도 틀어서 사람 목소리도 좀 듣고 그러는 거지. 설거지도 샤워처럼 원치 않는 궁금증이나 영감을 툭툭 잘 던진단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전부터 설거지할 때 조금 거슬렸던 부분이 떠올랐다. 설거지는 이삼일에 한 번 하게 돼버렸으니까 밥 먹고 나면 곧장 애벌로 기름기랑 찌꺼기를 물로만 씻어내서—적당히 코 푼 휴지나 물티슈를 활용해서—설거지 다된 것처럼 만든 뒤에 왜인지 모르겠지만 식기에 물을 가득 채워 모셔둔단 말이지. 그런데 꼭 여름철에 이런 거 같거든. 그릇에든 컵에든 받아둔 그 물이 하루이틀 지나면 묘하게 미끄덩해진다고 달걀흰자처럼. 조금 과장하면 개구리알 감촉 같기도 해. 식기에 달라붙은 그 미끈한 막을 손가락으로 씻쳐내고 있으면 기분이 막 좋지는 않단 말이야. 이게 대체 뭘까. 미지근한 물온도 때문인가 싶긴 한데 생각난 김에 똑똑한 애한테 물어본다.


미끄덩의 정체는 '생물막'. 세균들이 서로 엉겨 붙어서 만든 점액질 보호막이다. 온기, 수분, 영양분 따위가 모이면 미생물들이 그 안에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 미끈대는 촉감 낯설지가 않지. 개울 바닥 돌멩이 밟고 미끄러져 봤잖아. 돌에 발린 그것도 생물막이다. 바닷속에도, 식물 뿌리에도 조용히 달라붙어 있네. 그런데 도대체 왜. 무슨 역할이 있길래.


생태계에선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먹이사슬을 시작해 준단다. 그런데 인간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싱크대, 욕실 바닥, 치아 사이, 인공관절 표면에까지—다시 말해 인간의 위생, 기술, 통제라는 세계에 자연의 방식이 들어오면 '더러움', '세균', '위험' 같은 말로 바뀌어버려.

몸속(특히 치아, 폐, 장기 내부, 의료기기 표면)에 생긴 생물막은 만성 감염이나 질병을 유발해. 한 번 생기면 항생제로도 안 없어지기 때문에 수술이나 강력한 처치가 필요해지기도 해. 이 경우 생물막은 그 자체로 **문제의 ‘최종보스’**가 되는 셈이지.

자연에서는 순환인데 인간에게는 침입이 된다. 우리가 자연을 잘 몰라서일 수도, 너무 잘 알고 싶어 해서 통제하려 드는 탓일 수도 있다. 그러면 생물막은 결국 무엇이 되려고 그렇게 자라는 걸까.

생물막은 **그 자체로 ‘완성형 생존 전략’**이야. 생물막이 되면 그 안에서 번식하고 확장하고, 때론 흩어져서 다른 데에 또 생물막을 만든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된다’기보단, 생물막 상태 자체가 목적지이자 기지인 거야. 그리고 영양분이 다 떨어지거나, 건조해지거나, 외부에서 강한 물리적 압박(세척, 소독 등)이 오면 생물막은 무너져. 그 안의 세균은 죽기도 하고, 일부는 생존해서 다른 곳으로 흩어져 새로운 생물막을 만들기도 한다. 즉, 붕괴와 재정착의 순환.



설거지를 미뤘을 뿐인데, 그 사이 어떤 생명들은 기회를 얻었고, 나는 그것을 도로 닦아 없애고 있다. 그러면서... 어쩌면 우리도 누군가에 의해 미뤄졌으므로 이루어진 모습은 아닐지. 역시 귀찮아서 아직까지 봐주고 있는 게 아니냔 말이야. 무책임하고 게을러서, 또는 깜빡했다거나 하는 실수로부터, 그러나 효율과 합리를 앞세워 나는 이틀에 한번 하는 그걸 과연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말씀도 믿음도 책임은 없는 거지. 이렇듯 삶의 대부분은 무책임이란 말이야. 그래서 책임이라는 돌연변이가 의미를 가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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