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한차례 회오리바람이 치더니 박스 위로 뭔가 굴러 떨어졌다. 작은 낙엽 부스러기 같은 그것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조심스레 얼굴을 가져가봤더니 과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에 달린 가느다란 털 두 가닥이 바퀴벌레의 것처럼 간질댔다. 호응하듯 내 머리카락 몇 가닥도 쭈뼛거렸다. 시선을 떼지 않고 슬리퍼 한 짝을 집으려는데 벌레가 갑자기 허리를 치켜세웠다. 그리곤 앞다리를 번쩍 들더니 몸통을 살살 돌리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바퀴벌레와 사마귀는 그리 멀지 않은 친척이라더니... 아주아주 작은 사마귀였다. 사마귀는 한동안 광야의 박스를 누볐다. 그러나 마르고 평탄한 박스 위에 사마귀가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불모지로 날려졌을까. 사마귀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는지 박스를 벗어나 미끄러운 옥상 벽을 기어올랐다. 하지만 제 몸 높이만큼도 못 오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길 여러 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지만 나는 그냥 살고자 하면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안 죽으려고 죽이지 않겠지. 죽고자 하면 간단히 죽었으면 좋겠고. 그래야 매일 밤 못 살겠다고 죽여달라 기도하지 않겠으니. 이제는 아무리 빛을 눈에 넣어도 정신이 잘 안 드는 것 같다 친구야. 세수를 해도 멍하기만 하고. 듣고 있니 작은 마귀야. 네가 일곱 번 떨어져도 바보 같이 또 기어오를까 봐 미리 말해주는 거야. 아홉 번 떨어지고 나서 잘못 돼버릴까 봐. 그렇게 되기 전에 어서 내가 도와줘야겠구나.
왜 내게 왔어. 그리고 마침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나는 키워줄 수가 없는데. 내 속에 든 거, 먹이고 재우는 일만으로도 벅차니까.
―실은 1령, 2령, 밀웜 어쩌고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기권했다. 정보는 행동에 제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겁먹게 만들고, 의욕을 없애고, 가능성을 차단한다. 다른 오만가지 방법은 없는 줄로 알게 된다. 정보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같은 소리다. 모호한 정의만 있고 실체는 없다. 다행히 나는 제주 사투리도 할 줄 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아이 참... 빨개벗고 있다. 화요일 오후 세 시. 사람들은 모두 일터로 떠났을 터다. 여긴 오직 나뿐이다. 나는 땅강아지처럼 흙먼지를 헤집어 마른 솔잎 하나를 주워다 아기 사마귀를 떠받쳤다. 그리고 화단이 있는 옥상 밖으로 훨훨 날려 보내주었는데,
아이 참... 날개 아직 없지.
추락시켰다.
괜찮다.
살고자 했으니 살 것이다.
‘이 작은 생명은 바람을 타고 날아든 게 아니라, 어쩌면 태양의 냄새를 맡고 온 건지도 몰라. 헐벗은 네 옆에 잠시 머문 것도, 어떤 안도감 때문이겠지.’
어떤 안도감을 주는 에너지를 '생명감'이라고 갓 이름 붙여봤다. 나는 그게 뭔지 알아. 생명감 충만해서 드루이드 흉내 낼 수 있던 시절. 돌고래 타고 놀던 나는 죽었어. 나한테 그거 이제 없어. 이 작은 사마귀가 손등을 기어오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두려웠어. 그냥 알아. 이제 모기도 잘 물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