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키친

영혼을 위한 번뚜기 수프

by 육순달




달리기


콧구멍까지 캡모자를 내려쓰고 달려오는 여자

어제의 그 여자

오늘도 앵두 같은 입술,

앵두 줄기 같은 팔자주름에 눈살이 낑겼다

태양의 맛 재귀반사 거부하는 사람아

사람도 아니지 사람은 이제 다시 무엇인지 묻는다

바라봄을 되바라면 뭘 야리냐는 재귀반사여

선한사람 화살박힌 제 눈 뽑아 삼키는구나

관심법을 얻은 자여

우리는 서로의 땀냄새를 맡고

이 사람이 주되게 뭘 먹고서 이런 냄새를 풍기는지

이 악취가 어느 생각 감정과 연결돼 있는지 바로 세워야 한다

이 시대에 보는 것은 보임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피막을 덧씌우는 일이니

그 수많은 피막 위에 무거운 생각까지 눌러앉으면

큐피드의 화살 박히지 않는다

이 쓸모없고 귀여운 천사들아

밥은 먹고 자야지





안녕하세요


새벽 다섯 시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이 휴대폰인지 식칼인지 모르게 박명에 빛나고

어르신은 오르기도 이른 시절 내려오며 두려움에 말을 건다






아줌마 땅을 파며 갓 나온 개똥을 묻으려자

아저씨 버럭 똥은 집에 가져가는 거예요

아줌마 부러진 나뭇가지로 조곤조곤 마저 묻더니

강아지만 하얗게 웃는구나


안 될 게 뭐 있나 안 된 적뿐인걸


돌아선 내 혀가 내둘리고

강아지 하얗게 도망가고

아뿔싸 내가 가졌구나야

아저씨 아줌마 굵은 똥자루





젊음


찐빵 두 개 귀에다 붙이고 너는 누구의 환상인가

귀를 잘리고

아침의 심장도 뺏기고

어느 세월 새벽 벌레들의 쓰나미를 감지하고 눈물 흘리게 될는지

아지랑이 피어 올리는 땅의 열망(이퀄라이제이션)을

이 귀하고 값진 공연 마다하고

싸구려 음악에 휘청이는 그야말로 젊음이로다

어리석게 버려짐이 젊음이라 누가 말했던가

내가 말했었나

나도 몰랐던가

말을 돌려 무릎마다 처음 보는 가느다란 검정 머리끈 동여 매져

나 애송이요 등신이요 광고하는 이동식 광고판

긴 세월 제 몸 하나 익힐 법 없이 남의 젊음 주렁주렁 매달아야 움직이는 걸음마들이 공원에 가득 실렸다

멋도 없고 장애도 없는 주제에가 아니요 두뇌에 작은 문제가 있어 보여

복잡하고 재미난 제 아니라 쉽고 재미없는 돈을 믿고 유행이나 좇다가

지천명쯤 되어서야 깨달음을 얻었구로 늦바람을 휘둘러대는 젊음아

그 에스더란 아줌마 봐라 실컷 약 팔다가 이제 아무것도 못 느껴요 우울해요 징징

징글징글 어질어질

어느덧 풍경은 아이 둘 안고 가늘은 처녀 유모차 미는 언덕

아이들은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말하네





작아용


출근 시간 내달리다 신호에 걸리면

나 때문에 마음에 신호 걸리면

눈이라도 마주쳐야 건너지

니가 웃는지 우는지 발가락을 꼼지락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시커먼 유리벽 뒤에 숨어 앉아 비겁한 눈총 쏘는 대한의 건아들아

음메 무서워

음메 기죽어









번뚜기 수프는 십여 년 전, 한 바닷마을의 명물 ‘메뚜기 스프’에서 영감 받아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요리의 핵심은 잘게 다진 청양고추. 여기에 약간의 흑(또는 갈색)설탕을 가미하면 풍미가 확 살아난다. 늘 아쉬운 건 슬라이스 치즈 한 장. 냉장고 구석에 유통기한 지난 파마산 치즈가루라도 한봉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으... 피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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