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는 무슨

by 치카치카



전어는 무슨

꽁치찌개 끓이난

가을도 가난













꽁치찌개를 끓이며, 어찌 됐건 가을은 풍요롭구나, 감사하다 말하지만, 문뜩 떠오르는 가을 전어와 비교한다면 나는 가난한 게 맞습니다. 그래서 ‘끓어 넘치는 가을’을 억지로 끌어내려 ‘풍요로운 가을인데도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는 쪽으로 생각을 고쳤습니다. 하이쿠


평소엔 잘 생각나지 않는 꽁치찌개를 끓이게 된 것도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보았던 전어 때문이었습니다. 전어는 수산물 코너 한편에 [13,800원]이라고 덩그러니 팻말만 붙어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만원 어치를 세꼬시 쳐서 팔지 않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베트남산 갑오징어회와 민물장어구이가 9,900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람 입맛에 맞게 썰려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전어는 한두 시간 뒤에 진열된다고 했습니다. 기다리기도 애매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 소비쿠폰을 사용할 겸 방문한 참이었습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반대 방향이지만—한 번은 꼭 들르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마트는 시골 마을의 하나로 마트만큼 규모가 작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당연히 소비 쿠폰이 사용된다고 믿었을까요? 한참을 기다려도 차감 안내 문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는 계란 한 판, 다른 손에는 20L 종량제 봉투를 가득 채운 식료품을 들고 돌아오면서 문자가 오지 않는 게 어쩌면 국정자원 화재의 영향인가도 싶었습니다만 돌아와 마트 이름을 검색해 보니 단지 소비처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연매출 30억이 넘는 부자 마트였던 거예요. 아까운 내 돈... 그냥 온라인으로 주문했더라면 훨씬 저렴한 데다 이 고생도 안 했을 텐데요.


그러던 중 언 놈이 카톡으로 툭, 내 이름 석자를 후지게 고쳐 부릅니다. 이 자식은 꼭 이렇습니다. 키도 쪼꼬맣고 몸집도 땅딸막한 게 대충 30년을 봐도 툭하면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뭐냐 되물으니 부탁 좀 들어줄 수 있냡니다. 내가 얼마나 만만하면 부탁을 카톡으로 깨작거리며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더 가관입니다. 당근이 어쩌고, 이사가 어쩌고, 동네 인증이 어쩌고,... 나는 뭐길래 그리 조급하냐 되물었습니다. 끝내 왜 그러고 사느냐 말해버렸습니다. 그거 없으면 죽냐고 말해버렸습니다. 날더러 대신 중고 거래를 해달라는 부탁을 나는 괜한 참견을 했다는 말로 거절했습니다. 얼마 전 이 친구가 내 부탁을 들어줬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만 그건 고작해야 사무실에서 프린트 한 장 해다 주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내가 친구가 없나 봅니다. 다음날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탁이 너무 좆같았으니 이해해 달라고도 말했습니다. 전화로 잘 얘기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괜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난 유행을 모르고 따라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목감기가 유행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평소 다니던 구불구불 숲길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을 스쳐 지났던 어느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들에 꽉 막힌 코를 풀려는데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방아쇠수지증후군이 또 도졌습니다. 아, 마트에서 돌아오던 길... 무거운 봉다리를 손도 못 바꾸고 너무 오래 들고 걸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이, 사사로움이, 환절기의 통증이라면, 변화의 아픔이라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나도 어엿한 가을입니다.





‘끓이난’의 ‘-난’은 제주 방언 특유의 어미로, ‘~하니까, ~하니’ 정도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꽁치찌개나 끓여 먹으니’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꽁치도 가을의 계어입니다.

꽁치찌개에 식초와 카레가루(가람마살라)를 살짝 넣어보세요. (어떻다고는 말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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