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에 이슬 내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머리카락도 희게 빛납니다.
그 광경을 코 앞에서 보고 있으니 과연 코앞인가도 합니다.
나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 가끔 두렵습니다. 숲을 오가며 모든 가을이 풍족하고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줄곧 봐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곁에서 우산을 들어주는 사람도 봅니다. 누군가 죽어갈 때 가까운 다른 존재는 그의 생명력(의지)을 얻습니다. 생명력은 죽음을 보호하기도 하고 땅속에서 홀로 몇 년이고 웅크리기도 하고 곧장 기러기 되어 훨훨 날아가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일찍이 허옇게 센 머리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워 감추는 사람도 있고 마음과 달리 바쁘게 낙엽을 떨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을이 여름보다 긴 시간일 것이고 사계절 내내 가을에 머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순리대로 거듭 변화를, 때마다 탄생과 소멸을 맞이하는 사람(게놈)은 이 시대에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가끔 다른 이들의 계절이 궁금해집니다. 그러면 책을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항상 같은 결론입니다. 이렇게나 닮았는데 왜 이리 서로를 미워할까요. 왜 아니고 싶고 다르고 싶어서 안달일까요. 선험, 경험, 역사에 따른 관(觀)은 꿈처럼 잊혀야 할 습성일 뿐이지 그것(觀)이 사실인양 진실인양 마음을 먹는다면, 믿음을 준다면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탄생을 시기하고 두려워하여 희짓고 다니는 무따래기입니다. 오래된 힘의 환상을 현실이라 믿게 만드는 술법입니다. 믿음을 무너뜨려야 비로소 태어날 여지가 조성됩니다. 그제야 진짜 봄이 솜털 끝으로 포근히 내려앉습니다. 눈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됩니다. 하이쿠
‘흰 이슬’은 백로(白露)라고 하며 24절기 중 하나인 백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한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제주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백로 전에 서리가 오면 농작물이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세시풍속사전
일본어로는 백로를 시라츠유(しらつゆ)라고 합니다. 단어의 소리가 한글 못지않게 예쁘고(히니슬/시라츠유) 소리만으로도 촉촉하고 사늘한 가을 풍경이 그려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