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무슨 말을 해

by 자진유리


한 달여 전만 해도 헉헉대며 몇 번이나 멈춰 서야 했던 언덕길을 이제는 산악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쉬워 들르는 지경이 되었다. 언덕을 가벼이 박차고도 남는 코웃음이 웃기기도 하고 기가 차서 기록해 둔다. 터널만큼 긴 언덕으로도 모자랐는지 그만큼 긴 골목시장도 깡총깡총 둘러본다. 떡 냄새, 들기름 냄새, 생선 냄새, 담배 냄새를 지나 를디어 냐느가...




1등이 없으면 2등이 1등이고 9,999등까지도 없어지면 10,000등이 1등 행세를 한다. 저기 2,837,361등이 외친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나! 역시 실력과 운 따위는 아무래건 상관없는 거였어! 크하핫! 버티면 결국 이긴다!


ㅋ. 브런치만 봐도 기가 차지.


그래서 그 많던 1등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시기 질투 및 실험 분석 대상으로써 수챗구멍 아래로 흘러가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넓고 투명하게 퍼져버렸거나 그 과정에서 타락해 버렸거나 스스로 멸망해 버렸단다. 그러니 우리는 바보 흉내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갈수록 후져지는 건 작금의 AI 기술을 포함한 사회 경제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런 건 양상의 일면일 뿐이다. 우리는 만들어지고 낳아지며 중요한 무언가를 부모로부터 빼앗는다. 그래서 부모에게 없는 게 나에게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반대의 경우는 교육을 통해 보충되는 게 일반적이다―가족이라는 형태가 존재 중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건 그로써 삼각 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걸 정반합이라 하든 성삼위일체라 부르든 하등 중요하지 않다.


존재가 부모보다 조부모를 닮은 듯한 자각도 앞선 구조를 확장시켜 보면 빤한 양상이다.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의 연쇄적인 손가락 움직임처럼 검지와 엄지들이 교차하며 앞뒤로 좌우로 홀짝으로 연속된다. 연속되며 징검다리로 보다 닮은 꼴을 만든다. 공교롭게도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도 닮아 있다.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갔으면 언젠간 내려와야 하고 그 과정 어딘가에서 거미는 소멸을 맞이한다. 인간이 유래 없이 멍청해지고 있음이 필연인 이유는 부모로부터 그 중요한 무언가를 줄곧 빼앗아 오면서 그 형태는 유지되더라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중요한 것의 규모(에너지)는 점점 축소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과 그밖에 풍경들은 축소로 인한 저도 모르는 자연스러운 양태이며 기술로 인해 멍청해지는 기분은 ‘왼손은 거들뿐’ 정도의 보조장치이다. 그래도 가속화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해 보이지만.


정말로 똑똑했다면, 이세돌처럼 몇 수 앞을 내다봤다면 에디스완의 전구부터 세상에 나타날 리가 없다. 개인의 목숨은 고작 몇 수 안에 소멸하기 때문에 마음만 급급한 것이다. 그걸 어리석음 내지는 욕심이라 하는데 그들은 바둑돌이 통에 들어갔다가도 언제든 다시 집혀 나올 수 있음은 알지 못한 모양이다.


(배고파서) 그러니 그대 오늘 이 가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그대의 작은 몸으로 스치는 가을은 또 무엇인지, 두 개의 더듬이는 매일 잘 다듬고 있는지, 달팽이처럼 괴롭힘 당해도 다시 발기할 힘은 남아 있는지, 마지막으로 멍청한 건 괜찮은지 묻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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