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문(眞如門)
‘진여문’이라 적힌 처마 물받이 안에 쏙 들어앉아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이는 까치 한 마리.
귀여워서 슬금 휴대폰을 겨누니 훌쩍 날러가버린다.
죽여서 영원히 사로잡으려는 욕망은 같으니.
먹어치우거나 내다 팔려는 심산도 같으니.
두꺼운 전선을 연신 쪼아대는 까치가 모를 리 없지.
(그나저나 진여문이 뭘까...)
두 가지 마음
마음이 있다고 할까요, 없다고 할까요? 있다고 하면, 가져와 보아라. 하면 만질 수도 없고, 어떤 덩어리(相)로 혹은 물체(物體)로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생각)을 가지고 생각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바로 이럴 때,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을 하게 합니다. 정말로 비어 있어 없는데(眞空), 묘하게 작용(作用)을 하여 나타나 있습니다(妙有).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없는데, 없다가도 마음을 내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어떤 경계나 상황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하면 한 가지 마음일 텐데, 왜 두 가지 마음이라고 할까 생각하게 합니다. 여기서 대승기신론에 일심이문(一心二門)을 살펴봅니다.
마명보살(馬鳴菩薩)이 저술한 대승경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살펴보면 일심이문(一心 二門), 한마음에 두 가지 문을 강조합니다. 일심(一心)이란 물(物)과 심(心), 자기(自己)와 세계의 두두만물(頭頭萬物)이 생긴 그대로가 근원(根源)이 되는 것인지라 중생심(衆生心)이라 합니다. 중생심이란 대승(大乘)의 근본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음(一心)에 이문(二門)이란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 있는데, 번뇌 무명(煩惱 無明)에 오염(汚染)되지 않고 청정(淸淨)한 상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진여문(眞如門)입니다. 원래 마음이라는 말 자체도 필요 없는 아주 맑고 맑은 청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진여문(眞如門)입니다.
청정한 마음, 진여문과의 반대되는 번뇌망상(煩惱妄想)의 작용에 기동유전(起動流轉)해 가는 것이 생멸문(生滅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잡다한 생각들이 매 순간마다 일어나고 없어지는 반복되는 마음이 생멸문(生滅門)이라는 것입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문을 체(體)로 보고 생멸문을 용(用)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체(體)에서 용(用)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진여(眞如)의 체(體)란 움직임이 없어 조용한 바닷물과 같은 것을 말함이요 생멸(生滅)의 용(用)이란 바닷물이 바람을 만나 거센 파도가 일어 출렁이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一心)이 조용한 바다와 같이 된 상태를 가르쳐 진여문(眞如門)이라 하고 천차만별(千差萬別)이 일고 있는 파도와 같은 상태를 생멸문(生滅門)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심불급중생 삼무차별(心佛及衆生 三無差別),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과는 차별이 없는데(일심), 일심(一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부처와 중생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 같은 마음을 쓰면 부처님이 되고(진여문:眞如門), 중생(衆生) 같은 번뇌망상(煩惱妄想)의 마음을 쓰면 중생이 됩니다.(생멸문:生滅門) 그러므로 두 가지 마음의 문으로 말씀하신 것이 됩니다(...)
—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감각과 수치심
(...) 근데 난 레시피는 막 재구 이런 걸 안 해 봐 가지고, 원래 하지, 하는데 보통은 그렇게 배웠어요. 예전에 코프만 셰프 같은 분들은 계량을 아예 안 해. 감각을 안 키우면 혼나. 막 재서하면은, 야 꺼져 나가, 이렇게 되니까 재서 못 해. 감각을 익혀야 돼.
나한테 콩피살몬 처음 보여 줄 때, 오리지널 레시피는 오리 기름을 빼서 오리 기름에다가 연어를 익히는 거야. 나한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길래, 그래서 40도에서 43도 사이에 천천히 익히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치. 이러고 그냥 가버리시는 거야. 그리고 이제 선배 한 분이 오시더니 정강이 빵 차면서 정신 나간 새끼라고 나한테. 너 살몬콩피 누가 발명한 건 줄 알아? 모르겠다고 했더니 살몬콩피라는 음식을 세상에 내놓은 게 피에르 코프만이야. 어디다 대고 무슨 온도, 올리브오일 같은 개소리 한다고 엄청 욕먹고 셰프한테 가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웃으면서 살몬 콩피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 이리 와봐, 그래서 갔더니 오리기름 이렇게 해서 팬에다 올려놓고 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저으시더라고 손가락으로. 그러더니 나보고 오래. 내 손을 이렇게 잡고 오일에다가 이렇게... 이 정도 온도에서 익을 때까지, 그리고 가버리셨어.
(...) 그러니까 이게 맨날 감각, 감각, 너는 감각이 부족해서 요리하지 마 이런 말을 들었어. 요즘은 그 감각으로 가르치면 다 도망가잖아요, 뭔가 막 수치를 내놓으라고 막, 내놓으라고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그래서 더 멍청해지는 거 같아. 수치에 의존하고 온도, 중량, 질량, 이런 거에 의존하다 보면 다 놓쳐 결국에. 더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그거 없으면 요리 못해. 바보 된다(...)
[스크립트 출처: 강레오 걍레오. EP1. [강레오♥최강록] 유튜브 다시 시작합니다. YouTube.]
요즘인간은 척 봐도 기본이 전혀 안 돼있다. 선물 받아 타고난 감각의 아름다움을 계발하길 꺼리며 감각 자체를 낡고 부정확부적합한 것으로 치부하는 시류로 주객이 바뀌어 있다. 인간 말살 정책이다. 가축화다. 신이 우릴 버린 걸까. 감각없음은 곧 뿌리없는 나무. 곧 말라비틀어질 이파리나 냉큼 주워다 노란손수건마냥 흔들어재낄 줄이나 아는 이 무지하고 무감각한 망자들을 어쩌면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