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같은 32장
재작년엔가부터 설렁설렁 읽기 시작한 성경이—성실의 '어느덧'인지 지지부진한 '아직도'인지 모르겠지만—어쨌든 다윗의 아름답고 푸른 절규를 지나 그의 아들 솔로몬이 같지도 않은 설교를 끊임없이 해대는 통에 차츰 피곤해지고 있는 장(904쪽)에 이르렀다. 솔로몬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때에 아비 다윗이 지혜와 깨달음을 얻으라 말했다고 말머리에 적혀 있다. 지혜가 너를 보호할 것이므로 버리지 말고 사랑하라고.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므로 그 어떤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반드시 깨달음을 얻으라 말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적은 희생만으로도, 약간의 시력이나 약간의 시간, 약간의 시도만으로 그것을 제법 많이 얻는 듯 느낄 수 있는 잘 꾸며진 요지경 속이므로 깨닫기 어렵다. 다윗이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희생하고서라도'라고 말한 이유는 희생, 그러니까 남을 위하여 목숨·재물·명예 등을 버리거나 바쳐야만이 비로소 그 빈자리에 지혜와 깨달음이 깃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대에 진정한 깨달음이 존재할 턱이 없다.
2 나 역시 편리하고도 어리석한 현대적 작은 희생(micro-sacrifices)을 통해 '잠언(箴言:훈계하는 말)'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 성경의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 제목은 '미쉴레 쉬로모(Mishlei Shlomo, מִשְׁלֵי שְׁלֹמֹה)' 또는 줄여서 '미쉴레(Mishlei)'입니다.• 미쉴레(Mishlei, מִשְׁלֵי)는 히브리어 단어 '마솰(mashal)'의 복수형으로, '잠언', '격언', '비유' 또는 '지혜의 말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로모(Shlomo, שְׁלֹמֹה)는 '솔로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전체 제목은 '솔로몬의 잠언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책의 첫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첫 구절("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에서 제목이 유래했습니다.
이는 내 잠언집에 제목을 붙이기 위함인데 관행을 따르자면 본문의 첫 구절인 ~재작년엔가부터 설렁설렁~이 제목이 되겠다. 이대로는 조금 무리이니까 손을 좀 대어서 대충 <설렁설렁 쓰는 요즘 잠언>이라 하겠다. 밀레니얼 세대인으로서 시대를 특정해 <MZ세대의 잠언> 따위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까닭은 모름지기 잠언이라면 시대 불문 별반 다를 바 없는 인생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3 성경에는 때때로 2배 식초 같은 씨큼한 비유들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신박한 저주들이 정성껏 수놓아져 있는데 덜컥 이런 몹쓸 기획을 하게 된 사연에는 잠언들의 영향도 있다. "게으른 자는 고용주에게 상한 이빨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아서 대단히 귀찮은 존재이다",
4 또 "어리석은 일에 미쳐 날뛰는 바보를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새끼를 빼앗긴 어미 곰을 만나는 것이 더 안전하다"—그러니까 어리석을 바에 그냥 나가 뒤져라, 어리석은 자는 망자나 다름없다, 누구나가 다윗의 깨달음으로부터 스스로가 망념됨을 일순 깨닫게 마련인데 그 깨달음마저도 꿈속이고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5 잠언은 솔로몬이가 제 지혜에 빙의해서 세상을 그럴싸하게 분별하는데 그럴수록 제 지혜 바깥에서 자신 역시 분별받고 시험받고 있음을 느꼈다면 과연 잠언을 남겼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체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과연 세종대왕의 그것과 같을까?
6 성경의 인물들은 때때로 볼썽사납기도 하지만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느끼다 보면 그냥 커다란 한 존재의 일생이 그려지는 듯하다.
7 잠언 다음은 전도서라는 솔로몬 말년의 기록인데 첫 구절은 이렇다.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
8 솔로몬의 잠언은 31장에서 끝나므로 별생각 없이 숫자 32로 이어 나간다.
9 꽃 피어도 바라보는 이 없고 열매 맺어도 따 먹을 이 없으니 꽃도 열매도 맺지 않는 식물이다.
10 식물은 그러나 인간이 가지는 모든 면에서 몹시 느린 동물일 뿐이니 어떠한가.
11 박명수가 라디오에서 젠슨황 용팔이 시절 얘기를 하는데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뿌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잎사귀라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12 생각만 하고 행동은 안 하는 사람이 있고 행동만 하고 생각은 없는 사람이 있다. 한편 생각이 없을 때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행동이 안 될 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13 한겨울 목발을 짚고 산사에 와서 담배를 피우는 게 인간이다.
14 그 어리석음은 다음 주면 교회 주차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15 달리면 몸이 따뜻해지나 배는 차가워지고 앉아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나 몸은 차가워진다.
16 (이는 혈류에 관한 현상이니 지혜로운 자는 삼라만상을 꿰뚫을 것이다)
17 늙어 지혜로운 남자도 옆에 여자가 있으면 젊은이에게 흰소리한다.
18 겨울에도 은행냄새는 지독하다.
19 한겨울 반바지에 남자는 시샘하고 여자는 깜짝 놀란다. 근데 이제 남녀 모두 짧은 탄식을 곁들인.
20 아이는 "저건 뭐야?(나는 사람도 아님)"하며 호기심을 갖는다.
21 사람이 얼굴에 미소를 띠면 그 얼굴에 겸손해지는 것도 사람이다.
22 가장 예쁜 미소와 자비로움은 몰입과 적응 이후에 자연스레 나타나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일컫는 상태도 그렇다.
23 내가 당당하면 그 누구도 감히 헤아리려들지 못한다.
24 네가 쿵이면 나는 짝인 것이 삶이다.
25 그러니 내려오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누구 하나 간과될 수 없음이다.
26 내가 기쁘면 네가 슬픈 게 인생이니 내가 슬플 때는 네가 기쁜 줄 알고 슬픔 속에서 기뻐하라.
글 도움: 가을방학(이상), 김광석(김창기), 송대관(김동찬, 박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