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숫자 아닌 진실로 변하는 몸의 느낌을 감각한다면 지금 무렵이야말로 새해라 칭할 만하다. 양력은 통치적이고 폭력적이다. 수많은 무지와 고통이 거기서 났다. 사람은 나날이 새로 태어나지만 또한 태어나며 투명한 긴고아로 말랑한 머리를 조인다. 이로부터 탄생은 축복이 아닌 죄가 된다. 우리는 모두 강력한 무지가 씌운 가시면류관을 힘없이 머리에 얹고 살아가는 죄인들이다. 하나 그 누구도 이 세상을 거짓부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벗겨내기는커녕 포착하지도 못한다.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쾌한 삶인가. 수천 년 전 죽고 없는 귀신에게 여직 씌었다는 것이. 부모는 저들의 죄를 덜어줄 새로운 인간이 났음에 눈물 흘리며 기뻐한다. 그 시절 예수처럼 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이 나지 않는 이유를 이래도 모른다면 진지하게 머리를 매만져봐야 한다.
그리고 봄이다. 하얀 밤안개들이 서슬 퍼런 기운을 마저 삼키고 바닥으로 촉촉이 떨어지고 나면 완연한 봄일 것이다. 올 겨울은 하이쿠를 많이 못 썼다. 써둔 건 많이 있는데 주 1회로 제한했다. 왜 그랬더라 (...) 만화를 그리겠다던 포부는 또 무엇에 꺾이고 말았던가. 이제 사계절 중 봄의 하이쿠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여름의 하이쿠를 돌아보니 아주 형편없어서 즐겁다. 과거의 나를 비웃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부디 언제까지고.
당장 봄의 제목을 정해야 하고 또 한 가지. 앞으로 남길 모든 이야기는 멤버십이라는 제약 안에 감추기로 한다. 500여 개 남짓한 허물과 분비물들도 봄맞이 대청소하듯 정리하게 될 것이다(이만하면 많이 참았다).
바다내음과 껍질 발라먹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홍합을 또 시켰다. 홍합 따고 싶다. 겨울엔 홍합, 비 온 뒤엔 고사리. 우리 먹을만치만 따서 그날그날 감사히 먹고 그 자체로 일이고 사랑인 또한 전부인 단순한 삶이고 싶다.
사과들은 모두 무탈히 자라고 있다. 한겨울 발아부터 뿌리내리기까지, 거짓과 진실, 생명의 강인함, 아름다움을 목도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성공의 비결은 당연하게도 사랑의 지극정성이다. 찬 화분을 두 손 가득 안고 하염없는 눈빛을 보내주는가 하면 따뜻한 숨도 자주 불어넣어 주었다(함께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