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좋다... 웃통을 깜과 동시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으슬한 겨울바람이 유령처럼 살갗을 스쳐도 햇살 보호막 안이면 휴양지처럼 따뜻하다. 겨우내 까맣게 잊어버렸다. 반바지로 달리기만 해도 스스로 몹시도 대견하여 에너지(자부심)가 넘쳤으므로. 그러나 숲 속에는 내게 주어질 만한 햇살이 별로 없었으니 내 몸은 자연스레 너른 산사 한구석 터줏고양이 옆에 슬쩍 앉아 광합성을 시도했지만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가벗고서야 안다. 이렇듯 겨울엔 처지가 더욱 안돼 보인다. 차라리 가난한 농부였다면, 가난하지만 서퍼였다면 햇살을 얻기 위해 부러 옥상에 올라 박스 깔고 궁상맞게 떨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5년이 지나도 제대로 된 열매 하나 맺기 힘들다는 사과씨를 거실에 앉아 온종일 쳐다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얘들아 만약 꿈이 없는데 꿈을 갖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렴. 세간에서는 농부와 서퍼를 꿈이라고 한다지. 그러면 꿈이란 일상을 잇는(마찰시키는) 것이다. 이어졌을 때 거품, 거짓말,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잇다 보면 농부와 서퍼처럼 이미 드러난 조합이 나올 수도 있고 전례가 없을 수도 있다. 전례 없는 길은 있는 길보다 훨씬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사는 맛은 더 좋다. 어떤 길에든 앞서 걸었던 이들이 무책임하게도 미처 치우지 못한 꿈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아주 많단다. 그걸 쥐고 대대손손 장사해먹는 치들도 많다. 부디 그 요소 안에만 젊음을 머물게 하지 말아라. 한낱 이름과 작열에 붙잡히지 말아라. 태양 아래 우리는 모두 농부이고 서퍼란다. 그것이 진실이다. 은유가 아니라 태양 아래 땀 흘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존재란 거대한 순환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과 고통은 그것을 부정하고 업신여길 때 찾아온다.
지난주에 둘째(이름 아직 못 받음)도 무사히 나왔다. 나오는 방식도 생김새도 첫째랑은 완전히 달랐는데 가만 보니 첫째 보다 줄기가 약해 보여서 조금 속상하다. 둘째가 나올 때 머리 위에 흙이 많이 무거워 보여서 도와준답시고 조금 걷어내 준 게 잘못이었는가 보다. 그나저나 첫째를 생각 없이 화분 한가운데에 심어버리는 바람에 금방 땅속에서 싸움 나게 생겼다. 떡잎이 펼쳐지고 나면 땅도 좀 더 높일 겸 자리를 다시 잡아주어야겠다. 셋째도 무사히 발아에 성공했다. 어디 숨었는지 빤한 지점에서 낮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