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가 올라온다

by 육순달

아무 예감 없이 그저 해 뜨면 화분을 내놓고 해 지면 화분을 들이는 왕복운동이 더해진 하루하루 이따금 삼발이 잘 있나(이발이가 그새를 못 참고 일발이한테 먼저 갔기 때문) 들춰 보면 웃겨 죽겠는 게 얘는 끝끝내 껍질을 홀랑 다 벗고서야 나올 모양이다. 누가 막내 아니랄까 봐 관심을 더 달란 소리다. 김에 뜨거운 입김을 한 김 더 불어넣어 준다. 귀한 거다. 이 순간 내가 줄 수 있는 전부니까. 특별히 금방은 볶은 병아리콩이 이빨에 가득 껴있는 상태에서 줬다.


밤새 하얀 눈밭들이 검은 땅 위에 듬성듬성 깔렸다. 뉴욕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아침부터 기분을 지배하려는 뉴스들은 애새끼도 아니고 이제 그만 보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하루아침에 실내온도가 두 자릿수로 올라섰고 또 하루아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글쎄 일발이가 연둣빛 콩나물이 되어가지고는 등빨로 땅을 밀쳐 오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땐 분명 없었는데 다시 보니 있었다. 매사 다시 봐야 한다. 눈 비비고 다시 봐야 해.)

사과 씨와 내 눈이 마주친 순간이 잉태라면 발아는 태아 성장 과정이고 그것이 땅을 비집고 나오는 지금 나는 출산의 경이로움을 목도하고 있다.

밤새 흰 눈이 틔웠나.

어둠이 품었나.

달이 비췄나.

오늘이 봄에 한층 가까워질 줄 벌써 알았는지도 모른다.

올려둔 커피물이 전부 증발하도록 한참을 바라보는데 낼모레가 입춘인 것이 떠올랐다.

이런 노래를 가지고 있는 소녀도 함께 떠올랐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가녀린 몸에서 뿜어 나오는 폭발력이 꼭 닮았다.


나는 이제 따뜻한 커피로 똥을 싸고,

오토바이로 기타를 타다가,

화분 아닌 화면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텅 빈 속이 이 작은 것에게 마저 질투를 느낀다.

(...) 김에 네 이름은 질투다.

(구약성경식 작명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아이의 운명, 출생 당시의 환경 및 소망을 이름에 담는 것이 특징)




저녁 무렵 일발이(질투)가 싹을 틔웠다고 다시 한번 적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한층 더 시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대체 언제야 이 지독한 꿈에서 깰 수 있을까.

입고 벗고 속고 속이는 애달픈 섹스 같은 왕복운동을 생각 없이 하다 보면 깨(닫)는 이치 아닐 리 없건만.

엄마는 뭔가를 사다가 내 생각이 났는지 내 의중을 살피려다가 내가 그만 답장이 없자 내용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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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보면서 또 한 번 마음을 앓는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게 났을까.

무참한.

그런 생각에 오늘은 밥도 없이 밤만 이르다.

실내온도는 2도 가까이나 올랐는데 나는 더욱 움츠려 떨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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