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자판기

by 자진유리

평생 예술만 한 친구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인다. 드디어 바라던 돈을 벌었다고 한다. 엥. 나는 깜짝 놀랬다. 그런 데다 고작 40만 원이었다. 예술가의 예술은 왜 돈을 끌어당기기가 이다지도 어려운가. 예술은 돈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마음 안에서 주고받을 뿐이다. 예술에 소유란 없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온전한 나의 공명으로는 땡전 한 푼도 번 적이 없는 줄 알았다. 콩자반 한 알 같은 주름진 꿈을 차가운 마음 한편에 품고 살았다.




꼬마 모창가수가 하드보드지를 접어 아담한 상자를 만든다. 거기다 색연필로 카세트 오디오를 그려 넣는다. 버튼이 많아 조잡한 오디오다. 재생, 되감기, 빨리감기, 일시중지 버튼뿐만 아니라 그 밑에는 당대 유명 가수와 그룹의 이름이 적힌 버튼들이 스무 개쯤 만들어져 있다. 엠피쓰리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전에 음반 없이도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디오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 만한 구멍을 뚫었다. 영악하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은 없지만 나는 자판기를 만드는 내내 씨익 웃고 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짝꿍이 가장 먼저 오디오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백 원이었다. 백 원이면 원래 1절까지 밖에 재생되지 않지만 짝꿍이니 특별히 전곡을 틀어주겠다고 했다. 왜인지 짝꿍은 발그레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짝꿍을 비롯해 반아이들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춤도 잘 추는 데다가 축구도 잘하고 만화도 잘 그리고 공부마저 잘했다. 과연 그랬다고 적을 수 있는 데까지 검토하는 과정은 무척 길고 외로웠다. 최종적으로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증인들의 진술을 취합하며 내 기억이 사실이라고 적는다. 하물며 이 정도로 대단치 못하면 이 노래자판기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커먼 새끼! 이 커먼 쉐낏!" 몸의 구멍 밖으로 젝키의 기사도가 울려 퍼지자 친구들이 하나둘 주위로 모여 앉았다. 다행히 싸움을 즐기는 아이는 운동장에 공을 차러 가고 없었다. 교실에 남아 있었다면 분명 무대를 망칠 것이고 급기야 노래자판기마저 빼앗았을 거였다.


그날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불러서 이천칠백 원을 벌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자랑할 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그 돈을 내일 아이들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낡은 지갑을 열어 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정당하게 친구들이 기뻐하는 일을 해주고 그에 대한 마음을 받는 거였다. 학종이 따먹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돈을 갈취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용돈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매일 저녁 김을 얹은 간장밥을 먹어야 되는 게 싫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뭘 하든 엄마는 결국 나를 울렸다. 이제는 어디서 병까지 얻어와 나를 수시로 울려댄다.



처음은 가사를 바꿔 부르는 정도였지만 그다음은 멜로디였다. 결국 세상에 없던 노래가 최초로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상혁 상혁 나 좀 봐/

/그만 먹고 나 좀 봐/

/샤프심 좀 먹지 마/

/공부 벌레 최상혁/


내가 느끼는 친구들의 버릇이나 특징을 살린 노래들이었다. 담임선생이 교실 밖에서 그 광경을 가만 지켜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다가올 음악 시험이 그렇게 정해진 건 순전 나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뒤를 돌아 날 째려본다. 너른 평화가 하나의 거대한 폭탄으로 응집되는 순간이었다. 폭탄을 쏜 건 선생이다. 평화를 꽉 쥐어 뭉친 것도 선생이다. 내 탓이 아니다. 검붉은 물질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요동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시기하거나 미워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처음 느끼는 공포였다.


나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을 차러 운동장에 나왔다. 그러나 예전처럼 드리블을 잘할 수도 없고 골을 넣지도 못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리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나는 죽음 같은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의 노래는 무력과 질서에 쇠하고 망한 거였다. 이 영원한 순환의 고리가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라는 걸 아주 오랜 뒤에야 깨닫게 된다.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될 때까지 나는 긴 혼돈 가운데 있었다. 학교라는 나라가 망하고 직장이라는 나라가 여러 번 세워지고 망하고 난 뒤였다. 노래는 외딴섬의 변방에서부터 작게 들려왔다.


나중에서야 선생은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태됨을 느끼고 도망치듯 중심으로 돌아온 뒤였다. 인연이 맞아 육 년 동안 한 직장에 종사하게 되지만 그 흥성도 또한 저물고 말았다. 또다시 망했다. 이제 못해먹겠다.




나는 또 뭘 해야 될까요. 이제 그만 안 하면 안 될까요.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되는 걸까요. 삶은 왜 쓸데없이 이렇게 길죠. 왜 자꾸 뭔가 해야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걸까요. 왜 이런 삶은 내 길이 아닌 것만 같을까요. 나는 그것들을 몽땅 노트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알고 싶은 것. 그동안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 어쩌면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것.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질문과 마주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건드려보는 거죠. 그건 마치 무한히 펼쳐진 피아노 건반 같아요. 다 누르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어쩐지 자꾸 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가장 가까운 건반부터 눌러봅니다. 그다음 그 위에 검은 것도 하나 눌러봅니다. 그 둘을 함께 눌러보고 또 모든 손가락을 써서 열 개를 한꺼번에 눌러도 봅니다. 강하게, 약하게, 빠르게도 천천히도 눌러봅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노트에 옮겨 봅니다. 작곡에 통용되는 규칙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오히려 좋겠습니다. 이러면 그 누구도 음악을 악보를 통해 배울 수 없을 겁니다. 간간이 그것을 악보로 옮기는 사람이 있겠습니다만 어쩌죠, 악보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겠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악보에 전혀 그려지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저장하지 않고 새로운 건반을 건드리는 데 심취해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건반들은 왜 자꾸 늘어가는 걸까요.


내가 쓴 악보를 연주해 봅니다. 역시나 음악이 못됩니다. 그때 불현듯 모든 음표들이 두근거리더니 별처럼 쏟아졌습니다. 나는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빨리 진실을 알아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곧장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안다면 세상이 이런 모습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말하기 전에만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조심스레 커튼을 열어보았습니다. 트럭 한 대가 지나가고 흰머리 아저씨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그것만으로 몹시 흐뭇했습니다. 아주 푸-욱 안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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