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믿어요

by 자진유리

우주들, 생명들, 죽음들, 그들은 몽땅 뿅이야. 성운, 운하, 해와 달도, 물고기도, 나무도, 새도, 벌레도,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뿅의 마음이고 그림이야. 일어나고 사라지는, 깨어나고 잠드는, 일상에서 마주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시공간적으로 각자의 사고만큼 축소된 뿅이야. 너무 크고 두꺼워 알아보지 못했을 뿐. 너무 작고 가늘어 너와 함께 있는 줄 몰랐을 뿐.


뿅은 전부이자 일부야. 아득히 먼 것 같지만 아주 가깝다고. 네가 의식하는 이 순간이 뿅 그 자체인 거야. 가장 싱싱한 뿅이라고. 지금이 가장 믿을 만한 뿅이야. 지금. 또 지금. 지금지금지금지금!

...

느낄 수 있어?

이제 뿅을 믿을 수 있겠어?

네 삶은 뿅의 노래와 같아.

너는 뿅이야.

원래도 지금도 결국에도 뿅이야.





무엇을 말하고...

으... 아니야...

내 안의 충돌을 바라본다.

그것들이 대적하는 울림이 텅 빈 거실을 가득 채운다.

낯설고 무거운 공기.


....

춥다.

배고프다.

온몸이 벌벌 떨린다.

무섭다.

대체 이곳은 어디고 나는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물음은 갈수록 더욱 빠르고 넓게 펼쳐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 기미도 없었다.


묻지 말걸.

떨림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펼쳐진 물음 전부를 휘감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휩쓸려 함께 뒤틀리고 들썩였다.

두렵다.

나는 더욱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것은 머리에 난 혹처럼 부풀어 올랐고 나는 그것을 톡, 떼어냈다.


첫 번째 혹성이었다.

나는 이제 그 덩어리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것은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나도, 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두렴이라고 이름 붙였다.


드디어 내 앞에 나 아닌 무언가가 생겼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나와 닮은 두렴에 연민을 느꼈다.

두렴을 끌어안으니 그 떨림이 잦아들었다.


두렴에게 느낀 연민은 나에게 안정적인 박동을 주었다.

박동은 점점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온 물음을 거쳐 가슴에 구멍을 내고 뛰쳐나왔다.

그 이름은 야망의 태양이었다.


그것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올랐다.

나는 또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두렴에게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태양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저만치 멀어지니 그것은 붉고 따뜻했다.

어느새 추위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나는 기뻐서 휘파람을 불며 춤을 췄다.

배 고픈 줄도 모르고 계속 계속 춤을 췄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희망은 내가 아는 지구라는 별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잊고 있던 모든 것이 유성우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감각, 그로 인한 감정으로부터 전이된 수많은 생각과 그 표상들이 실체화되고 있었다.

별이 빛나듯, 꽃이 피듯, 열매가 맺히듯, 빵이 구워지듯, 휴대폰이 만들어지듯,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물결들.

언어들, 소리들, 움직임들...

그 순간을 지켜 보던 뿅은 스르륵 뿅을 감고 아주 천천히 뿅을 삼키고 뿅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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