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소리아
1
밥상 위에 성경책이 입 벌리고 있다. 창세기 15장을 끝으로 입술이 바짝 말라가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목사 집안의 장손인 것이다. 민족대표 33인에 그의 고조부 얼굴이 박혀 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처럼 목사의 길을 걷더니 불과 몇 년 만에 그리 되었다. 뜬금없는 광경을 지켜 보며 그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유전자의 횡포에 굴하지 않겠다. 끝내 유전자의 의지를 꺾은 종족으로 남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평생 황당과 방황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운명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도 쭉 방황할 것이다.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고 아무 데나 갈 것이다. 끝내 황당하게 기록될 것이다.
2
그도 순수했으므로 교회의 기둥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나풀나풀한 가운을 덧입고 피아노 반주를 하고 성가를 부르고 헌금도 걷고 단상에 올라 친구들을 바라보며 기도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사과를 먹다가 그것이 목에 걸려버리자 더 이상 천상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고 그로부터 모든 행사에 흥미를 잃었다. 산타처럼 신 또한 못된 어른들의 장난질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신과 지금 말할 수 있는 신은 소로 다른 무엇이다. 누군가 나에게 신을 믿느냐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신이란 것은 믿음 이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웬일인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구약보다는 신약이고 잠언, 시편 같은 게 수월하다는 잔재가 머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기로 했다. 그 유명한 '빛이 있으라'를 바탕체로 읽으니 한바탕 웃음이 나서 나 역시 그게 보기에 좋았다. 한 장을 넘기자 티끌로 대충 만든 아담이 태어났는데 아담이 발생한 뒤부터 하나님은 어째 답지가 않았다. 그는 어리숙한 인간의 성질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아이들은 도대체가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았고 그는 일개 부모처럼 감정을 휙휙 드러내고 횡포를 부려댔다. 그런 데다 마땅한 기준 없이 편애하고 미워하고 그런다. 자다 깨서 벌인 일을 아~씨 어떡하지? 어떡하지? 괜한 짓했네? 그러고 있다. 희극이다. 그도 모든 게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4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빛이 있으라~" 말하니 화장실이 나타났다. 소변을 보며 "하늘 아래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변기물을 내리며 "뭍이 드러나라" 말하니 그대로 되었다.
5
하나님은 왜 악을 멸하지 않느냐 따진다. 또 그에게 무엇을 간청하기도 한다. 우리 엄마 평생 고생만 했는데 누구보다 착하게 살았는데 왜 몹쓸 병을 주느냐 분통한다. 그게 신을 찾을 일일까. 인과가 없다. 그 신은 현대인의 병을 고칠 줄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신이 과연 선할까.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줄까. 이 역시 아니라고 본다. 신은 선악이 없고 게으르고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데다가 실수 투성이다. 생명, 자연, 에너지, 그 밖의 인간이 밝혀내고 이름 붙인 만물의 본성과 같다는 말이다. 부처든 하나님이든 그 어떤 이름이든 진리의 안내자에 불과하다.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인류는 번성했고 신은 스스로 알건 모르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신인 줄 모른다. 나와 가장 밀접한 신은 부모지만 밖에서 만나는 그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결국 똑같은 맥과 얼을 가진 신이다. 과거로 과거로 아득히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하나의 뜨거운 설렘이 있을 뿐이다.
6
한 생각이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고 끝도 없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모습과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