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검침 안내 문자를 받고는 훌쩍 또 반년이 지났구나 한다. 방문 일정을 숙지하면 그만일 텐데 속이 이토록 부조리하다.
@~@~@~@~@~... 그래서 내년이면 내가 몇이더라... 슬슬 나이를 잘 모르게 되어 간다. 그래서 나이가 필요할 때면 검색창에 'ㅇㅇ년생 나이'라고 쳐야 한다. 간단히 금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뺄셈 하면 될 일이지만 믿음이 부족하다. 믿음을 몸 밖으로 빼앗긴 지 오래인 것 같다.
나이를 잊는다는 것은 제도권에서 벗어난 치매와도 같으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먹고살기 바빠서 나이마저 잊어버리게 된 사람 쪽이, 새벽부터 찬 시장에 나와 따뜻한 떡을 찌는 사람이 훨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제도권 몰입이 불러일으킨 파장이 해변을 휩쓸고 나면, 거기엔 거대한 질문 하나만 덜렁 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줌마는 왜 떡을 찌세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누운 자리에서도 떡을 찌나요?
질서들은 때때로 오늘이 '그날'임을 상기시킨다. 일곱째 날마다 다른 색이 칠해져 있다든가, 봄이 시작이고 겨울은 끝이라든지... 그때마다 머리가 지끈한다. 빨간 불에 멈춰 빨간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달력을 온통 새빨간색으로 칠해주고 싶은 날도 있었다.
어제 뭐 먹었는지 모르겠고 내일 뭘 먹을지 모르겠다. 어제는 거짓말이고 내일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아주 바람직하다. 나는 오늘 화분에 물을 주고 이 순간만이 무럭무럭 자란다. 그래 봐야 이 부조리한 행태 역시 누군가의 사고를 바탕으로 질서로써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더욱 분별할 수 없는 병신처럼 살다 가고 싶은 것인데 그것이 내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때 맞춰 활짝 펴고 또 오므리고 때로는 나를 맡긴 채 눈을 감아 활공하고... 내가 만약 비둘기로 태어났다면 분명 날지 못했을 거다.
바닥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은 기껏해야 힘을 줘서 점프하는 게 전부야. 아무리 높아 봐야 60센치고. 종일 팔짝대 봐야 결국 바닥으로 돌아오게 돼있지. 그러니 바닥에서 하릴없이 화용론이라는 거나 펼치고 그걸 연구랍시고 하고 앉아 있다고. 덕분에 어제는 많이 웃었다.
여자는 왼쪽 가슴께에 '서울도시가스'라 적힌 조끼를 걸치고 있다. 헤어스타일도, 안경테도, 지난번과 똑같다. 늙지도 않는 것 같다.
당장은 육 개월에 한 번이지만 더 나이가 들면 일주일에 한 번씩 탕웨이가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나는 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매일 무엇을 잊어버리고만 있다. 어제가 연속되지 않는다. 세탁기는 아침마다 뺑뺑 돌아가고 이 아침의 발버둥은 매일 다른 길을 내놓는다.
"원래 이랬나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나는 그만 "뭐가요?"라고 되물었다. 보일러 관이 묻힌 바닥이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건 5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는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한다.
다른 집에는 무슨 질문을 할까. 그래서 여자는 하루에 몇 가구를 들락날락할까. 시즌 업무가 아닌 적은 인력으로 365일 돌아다녀야 하는 업무일까. 종일 얼마나 많은 음료를 억지로 받아 마셔야 될까. 급하면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할까. 외로운 노인의 쓸데없는 질문에 답하느라 다음집 방문에 늦기도 할까.
이 집에 들어온 소감은 어떠냐고 묻고도 싶었다. 얼마 전 인센스에 취미를 들였는데 집에서 재미있는 냄새나지 않나요? 집안 온도는 어떤가요? 혼자 지내긴 너무 넓죠?
다채로운 집의 규모와 냄새, 온도... 매일 수십 수백 가구를 들락날락거린다손치면 틈틈이 무슨 생각을 달게 될까. 수없이 남의 살림을 적법하게 구경하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영감을 얻게 될까. 그러고 보면 꽤 좋은 직업이 아닌가.
그 남자가 이행기에 접어든 지도 어느덧 이 년째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까맣게 잊고 있던 세계관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러자 더욱 그것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배가 뒤집어진 콩벌레처럼 수많은 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도 훌쩍 다리를 집어 넣고 몸을 둥글게 만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평생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도 모자라 자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손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래서 지금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하늘색 반바지에 검은 패딩을 걸치고 가느다란 스포츠 머리띠로 울퉁불퉁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는, 거실에 홀로 웅크려 앉아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묻는다.
"원래 이랬나요? 안 이랬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