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타임

by 자진유리


추우니까 가만있는 게 행복하고 자꾸 방을 쳐다보다가 기어이 기어들어가 눕는다. 퍼뜩 몸을 움직여서 열을 냈으면 좋겠는데 자가발전기가 점검 중인지 시동이 안 걸리는 날. 이런 날은 바깥에서 열을 얻어오거나 열을 가둬야 한다.


눕다가 낮잠을 잤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낮잠을 두 번 나눠 잤던가. 그런데 아무 데도 잠을 잔 흔적이 없다.

아무튼 허벅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뭔가를 적고 있다.


열을 얻기 위해 보일러를 후끈하게 땠다. 그리곤 밥도 엄청 먹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말고 둔눠서 좌빈둥우빈둥 뒹굴거릴 작정이었는데 빌어먹을 커피도 마셨고 화분에 물도 줬고—스킨답서스가 늘어지길래 설탕물을 적셔봤다—노래도 불렀고 기타도 쳤고 화산에 대해서 공부했고 밥도 지어먹었다. 그랬더니 잘 시간을 한참 지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누웠다간 체내에 열량이 남아서 땀에 흠뻑 젖어 깰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침에 쓰다만 옥상이야기나 마저 쓴다. 눈은 피곤하니까 감고 쓴다. 왜 오타가 나질 않지. 눈을 뜨면 고치기 바쁜데 감으니 고칠 것이 없네.




모처럼 하늘이 맑으니 앞집 남자는 결심한 듯 옥상에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빨래 하나 너는 데 되게 오래 걸리고 있고 요렇게 널었다가 죠렇게 고쳐 널었다 하는 게 어처구니없이 웃겨서 힉힉거리다가 잔소리가 하고 싶어 졌다.—그게 아니지! 수건은 널찍하게 널라고! 수건에게는 두 칸이 필요해 청년! 빠삭빠삭하게!


한겨울에도 창을 자주 여는 여자의 집은 어젯밤 늦게까지 왁자지껄하더니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역시 날씨가 중요하다. 날짜보담은 날씨가 진리지...


남자와 여자의 집 사이에는 베를린 장벽 같은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옥상에는 통신중계기가 도미노처럼 줄줄이 세워져 있다. 중계기의 (악)영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판단하고 싶지 않다. 새들이 가끔 날아와 거기 앉기도 하므로 괜찮다고 친다. 오늘은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어 무언가를 열심히 부리로 쪼고 있다. 먹을 만한 게 있을 리가 없는데 가만 보니 중계기 전선 꾸러미를 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주변에 해진 전선가닥들이 보였다. 잘라서 둥지라도 지을 셈인가. 어쩌면 내 마음이 닿았나 싶어 응원하고 있달지.



며칠 전 거실에 가만 앉아 있다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감지된 냄새를 맡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집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옥상 샤시가 열려 있음을 확인했고 다행히도 밖에서 들어온 냄새였다. 밖을 나가보니 옆블록 고시원이 환하게 불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가만 지켜봤다. 소방차 여섯 대와 구급차 두 대가 황급히 도착했고 사방에서 꽁꽁 언 사람들이 적혈구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우리 동네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라서 놀랬다. 드론이 열심히 일하는 걸 보고 또 놀랬다. 불타는 건물은 어쩐지 촛불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안정감을 줬다. 물론 기도도 잊지 않았다. 구조용 들것은 몇차례고 비어있었다.


산불도 생태현상으로,,, 그래서 작은 산불들은 부러 진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숲이 빼곡해지면 오히려 큰 불이 나게 되고,,, 일 년이면 자연스레 복구가 되고,,, 또 산불이 일어야 그로부터 씨앗을 퍼뜨리는 생명도 있는 모양이다.


마음은 어떤가. 크고 작은 산불을 예의주시하고 매일 출동하다가는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은 내버려 두어야 하고 필연 타 없어져야 한다. 그로부터 전체가 회복됨을 믿어야 한다. 진화鎭火하지 않는 것이 진화進化를 돕는 일이겠다. 내버려 둬. 결국 마땅한 터로 재건될 것이다.


집착하지 않고,,, 깊이 스미지 않고,,, 부모 내지는 신의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거기서 무엇이 자라나고 번지는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의 관객이 되는 것만으로도, 삶의 비밀스런 이야기는 그 속에도 무한히 펼쳐지고,,, 팝콘은 계속 집어 먹을만하다.


필시 우울하다고 여겼을만한 감정, 상태가 그저 지쳤음, 체력 고갈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안 우울한 사람들이 훨씬 많겠구나 싶었다. 우울한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낮잠을 자버렸더니 매가리가 없다. 햇볕이나 쬘 심산으로 전자스틱에 궐련을 끼우고 옥상으로 나갔다.

전깃줄 세 줄에 참새가 한쌍씩 나눠 앉아있다. 귀여워. 어떻게 저리 귀엽고 가볍게 앉아있지. 기분 진짜 좋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외줄 타기 쑈만큼이나 진귀한 구경거린데. 가벼이 할 일이지.


한 커플 날아가니깐 나머지 짝들도 뒤따라 난다. 어디 같이 놀러 가나보다.

삼대가족일까. 다 똑같이 쪼그매서 누가 아빠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다.

모르겠으니까 더욱 귀엽다.


이 시각에는 옥상에 볕 드는 면적이 줄어든다. 나는 조각 빛을 쫓아 어깨너비만 한 마름모꼴 볕 속으로 몸을 집어 넣고 선다. 그러고는 눈을 감는다. 햇볕이 서서히 눈꺼풀을 뜨겁게 달군다.

~지글지글~

아, 나는 그만 달궈진 눈꺼풀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다는 망상을 해내고야 만다.

삼겹살을 굽는 눈껍불판의 보리심이 되기로 한다.

내 몸은 반바지에 쓰레빠지만 나는 지금 달궈진 눈꺼풀이기 때문에 하나도 춥지가 않다.


눈꺼풀로 바라보는 태양은 총알로 머리가 뚫릴 듯이 강렬한 빨강이다. 그러다가 주홍색이 되더니 노랗게 바뀌어간다. 노랗다가 더욱 은혜로운 노란색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빛을 잃은 듯이 점점 하얘진다. 하얘지다가 투명해진다. 투명해지다가 빛도 어둠도 없는 빈 공간 안에 들어선다. 이쯤 되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문뜩거리는 두려움과 설렘, 환희를 오가게 된다.


눈꺼풀에 힘을 주어 눈을 꼬옥 감았다. 그랬더니 빈 공간이 응집되며 어둑해지더니 중심부는 진분홍색으로, 바깥은 암청색으로 번져나갔다.

놀라움을 뒤로하고 눈을 살며시 뜬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벽, 지붕, 굴뚝, 실외기, 전깃줄, 빨래건조대, 온 사물들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 양자요동처럼 물결치는 노랑, 파랑의 에너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으면 진실을 볼 수 있다. 내가 태양을 바라봐야 태양이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끔찍하게 바라본다.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대놓고 의식될 수준이기 때문에 적어도 낮에는 나쁘거나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어야 마땅하다. —나 이제 들어갈 거니까 그만 쳐다봐요.


집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냄새가 난다. 그새 밥이 다 된 모양이다.

다된 밥에 주걱으로 십자가를 긋고 한판 뒤집는다. 밥이 역대급으로 잘됐다. 얼마나 윤기가 돌던지 삼겹살을 마저 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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