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전...
제목을 짓고 보니 수잔이라는 역사적 인물 내지는 사연 있는 사람에 대한 감상이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수전, 또는 수도꼭지, 싱크헤드, 주방헤드라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존재에 관한 실없는 이야기다.
나는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안 끼는 타입이다. 혹시나 남아 있을 기름기, 잔여 세제를 말끔히 제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뽀득 너머의 무언가. 그것을 느끼려면 겹 없이 대상과 직접 맞닿아야 한다. 애벌 설거지를 할 때는 수세미조차 쓰지 않는다. 지문 달린 손가락은 가장 훌륭한 수세미다. 우리 몸엔 없는 게 없다. 이미 다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군인에게 총기, 손흥민에게 축구화가 있다면 나에게는 수세미가 정실이자 무기다. 그것을 잘 관리하려면 어찌어찌해야 된다는 게 기특하게도 몸에 잘 뱄다. 어떤 성분은 피부를 조금 상하게 할지 몰라도 수세미에게 이롭다면 상관없다. 그렇게 벌써 이 년째 같은 수세미를 쓰고 있다. 아직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설거지하는 광경을 누가 본다면 왜 그렇게 까지... 무척 답답하고 세심해 보일 수 있는데 사랑이 담기면 느릿느릿 정성을 다하게 된다. 그 저변에는 소모품이라도 금세 버리고 새것을 들이는 게 심적으로 어렵게 된 까닭이 있다. 장비든 환경이든 무언가 바뀌고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에너지 소비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친환경 운동으로 연결되는 것들도 있다.
놀이터에서 덤블링하다가—스물몇 살에 스스로 발목을 부러뜨린 뒤로 아주 오랜만에 실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십 년 주기로 삶의 모양이 반복되는 듯하다. 분명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 겹을 벗겨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 흥성쇠망의 파형이 보인다. 너무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해질 테니 그저 신기하네~ 하고 만다.
십 년 전보다는 보잘것없지만 설거지하다가 엄지손가락을 깊이 베였다. 수세미로 칼을 문지르다 그런 게 아니고 그릇을 깨뜨린 것도 아니다. 그냥 싱크대 수전에 베였다. 아마 세계 최초가 아닐는지.(두근두근)
직수에서 분무로 바꾸는 똑딱이 버튼을 아무 생각 없이 만질 때였다. 하씁, 뭐야—하고 경위를 살피다가 수전머리에 손톱가시처럼 들뜬 날카롭고 거친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됐지? 언제부터 이랬지? 모양을 보아하니 날카로운 물건에 찍힌 모양이다. 언제 그랬을까. 모른다. 언제 상처받았는지도 모르고 언제 상처를 낸지도 모르고 산다.
그런 것들을 누구나 안고 산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돼버리는 순간들. 이런 것들과 비슷한, 심각하게 들여다 보고 나름의 가정과 증명을 해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운이라고 얼버무려야 하는 것들, 신이라고 믿어야 하는 무엇들에 대해 나는 쭉 알고 싶어 했다. 손가락에 피가 철철 나고 그릇 안에 붉은 파도가 휘도는 걸 바라보면서도 나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설거지를 멈추지 않았다. 꼭 이럴 때 전화기는 울려대고 빨래가 다됐다는 음악이 들려와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해자와 똑같이 날카롭다. 언젠가의 나도 그랬겠지. 상처받은 자의 공격성은 상처를 낸 사람과 같다. 세상은 그렇게 얽혀있다. 따지고 보면 칼이 수전을 찍은 것엔 의도가 없다. 일상적인 것일 수도, 가벼운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칼도 수전도 존 맥긴도 그 누구도 몰랐다. 그럼 나는 도대체 왜 다쳤지? 그냥 수전에 왜? 설거지하던 사람이 마저 생각한다. 칼을 쥔 건 누구였을까. 칼을 품은 건 누구고. 모르지 않지만 딴 길로 새본다. 칼이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가위일 수도 있고 톰 크루즈일 수도 있고 인형일 수도 있다. 인형이 어떻게 수전에 상처를 내냐건 세상에는 다양한 재질의 인형이 있고 상상하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소설을 써서 인형이 수전에 흠집 낸 경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행기도 띄우는 마당에.
칼 손잡이 뒷부분으로 수전의 거친 표면을 꾹꾹 눌러 매끄럽게 만들어 놓았다. 마른행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손가락 상처를 돌본다. 생각보다 넓고 깊게 찢어져서 아무래도 꿰매야 할 판인데 빨간약으로 대충 소독하고 밴드로 칭칭 감고 만다. 흉질 게 걱정이 아니다. 아, 오늘은 샤워하기가 좀 곤란하겠네—이게 걱정이다. 어이없게 다친 것은 문신처럼 흉 지게 두면 그만이다. 까불지 말자. 말조심하자. 신중하자. 문득 돌아보기 좋겠지.
수저질 하려니 다친 엄지가 너무 아파서 엄지 역할을 검지에게 넘겨주고 젓가락질을 해봤다. 젓가락을 한 칸씩 이동시켜야 한다. 처음엔 잘 안 됐지만 결국 가능하게 됐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 필요했다. 엄지를 나머지 손가락들과 하나하나 맞닿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은 창조력, 인간이 이모양이게 된 진화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 엄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니 인간에서 조금 멀어진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는 점점 기능이 쇠하고 사라질 것이지 반대로 나아지고 근본이 뒤틀릴만한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날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도.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상실에 가까운 일들을 생각날 때마다 염두에 추가한다.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다. 외계인에게 잡혀갔을 경우 대처법도 마련해 놓았다. 중요한 것은 준비가 아니라 아, 그때 가면 알아서 다 되겠네라는 확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겠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는 쪽이 돼버린다. 그때 나는 무엇이 될까. 어떤 지혜를 발휘하게 될까. 이렇다 보니 무엇이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아무 걱정이 없다. 이것 참 큰일이다.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려나. 설거지하다가 수전에 손 베는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