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상징과 세계관을 물어볼 거니까 준비해 와ㅋㅋ 가장 꼭대기에서 너를 관장하는 에너지에 대해
말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나.. 바... 빠.. . 나 그런 거 몰라 살려줘ㅋㅋ"
"뻥 치지 마 모르는데 어떻게 예술해ㅋㅋ 너의 영혼은 어디를 향해 외치고 있냐고. 너가 알리려는 바가 뭐야. 생각해 보니까 만나면 술 먹고 개소리나 했지 난 너를 전혀 모르고 있었어."
"나 예술안해. 나바빠."
"아씨 조졌네. 또 틀렸어. 그래 하지 마..."
버스 내리니 눈보라 친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려는 널 붙잡았지.
곧장 도를 아시냐고 묻고 싶은 마음으로 활짝 웃었어.
대구탕 골목은 골목 안에서도 더욱 깊게 뻗은 가느다랗고 메마른 가지 같았지.
먹는 만화가 그려진 식당 앞에 멈춰 서서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너는 그 사람이 소개한 식당을 몇 군데 가게 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딱히라고 말했지.
나는 그 사람이 소개한 식당은 가본 적이 없었어.
대신 간판에 주인 얼굴이 붙은 식당에 대해 말해버리고 말았지.
아마 그런 것들이었을 거야. 너와 내가 자주 보지 못하게 된 이유는.
칸딘스키의 말을 품고 나섰지만 나는 너에게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는 알지 못했어. 중요하지 않았지. 서문만 읽고 나선 참이었지. 나는 늘 그래왔어. 서문이 마음에 안 들면 나머지는 안 봐도 빤했으니까. 이미 다 들여다본 듯했지. 아마 그런 것들 때문이었을 거야. 너와 내가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대구탕은 금세 끓었어.
서로의 안부와 식당의 분위기, 그리고 사회와 영성적인 것들로 나의 욕망이 점점 끓어오르려 할 때즈음, 그래서 술이 나를 멋대로 조종하기 전에 나는 품고 온 칸딘스키의 말을 들려줬지.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며 때로는 우리 감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각 시대의 문화는 결코 반복할 수 없는 고유한 예술을 창출해 낸다. 지나간 시대의 예술 원리를 재생시키려는 노력은 고작해야 사산한 아이를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꼴이 될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고대 그리스 사람들처럼 생활하고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작품을 만들면서 그리스식의 원칙을 따르려는 작가가 있다면 그의 작품은 단지 형식의 유사성만을 따를 뿐 그 정신성은 영원히 결여되고 만다. 이와 같은 모방은 원숭이의 광대짓과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보기에 원숭이는 인간의 동작을 완벽하게 모방한다. 가령 원숭이가 코앞에 책을 놓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긴다 해도 그런 동작은 내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
얘기를 듣던 너는 내가 읊지도 않은 외적 요소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모두 잘 알고 있었어.
역시 내 친구야.
바라던 바였지만 한편으론 모르길 바랐나.
그리고 나에게 조금 실망하기에 이르렀지.
아, 이깟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거였구나.
수년 동안의 물질주의가 지나간 후, 이제 막 깨어난 우리의 영혼은 아직도 불신과 무목적에서 오는 절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 온 세상의 삶을 불행과 무의미한 유희로 이끄는 물질주의의 악몽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이제 막 깨어나고 있는 영혼은 아직도 이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희미하게 깜박이는 빛, 말하자면 광대한 어둠 가운데 하나의 작은 빛이 있을 뿐이다. 이 희미한 빛은 하나의 예감일 뿐, 이 빛이 혹시 꿈이 아닌가, 또 휩싸여 있는 어둠이 진정 현실인가 하는 회의 속에서 영혼은 이 빛을 직시하려는 용기를 못 내고 있다.
너는 그냥 재미있는 걸 한댔어.
이미 세상의 원리 따위마저도 너는 없었어.
그건 지나간 일조차도 아니었지.
너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구나.
무엇을 말하고 시대를 표현하는 게 예술이 아니구나.
그러고 날더러는 리움을 닮았다고 했지.
“리움이 뭐야? 리움미술관?”
<노란비명>이었어.
"퍼머넌트 옐로우를 반쯤 섞어서~"
"좀 더 심리적인 고통에서 나오는 비명을 담아볼까요?"
"으아아아아아ㅏㅏㅏㅏㄱ!"
나는 키득거리며 쓸데없이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말았지.
그마저도 네 주변엔 그런 모임이 있다고 했어.
나는 이제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10년이 더 필요할 거라고 말했지.
너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일 다시 말하자고 했다.
아주 추운 밤이었어.
나는 아직도 활활 타고 있는데 떨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 몇 모금 남은 담배를 강제로 끌 수밖에 없었지.
결국 모든 관계란 고작해야 이런 모습일 뿐인 걸까.
사람을 만나면 더욱 쓸쓸해지는 것 같아.
아니야 술이 외로움을 부르는 걸 거야.
그러니 빨간 국물을 내 얼굴에 튀게 해 줄래.
서툴게 내 전부를 노상바닥에 깔았지.
사람들은 눈싸라기처럼 휙휙 지나갈 뿐.
대구탕은 맛이 없었어.
아무도 대구 할머니의 맛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어.
아니야 내가 잘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주고 싶었던 마음은 이게 아니었어.
나는 대체 뭐가 불만인 걸까.
뭘 원하길래 자꾸 이러는 거냐고.
돌이켜 보면 웃긴 얘기도 얼마나 많이 나누고 10년 주기설에 대해서도 서로 깜짝 놀라 공감하는 바가 있었지. 그 밖에도 즐거운 시간이었어.
그러나 나는 그 순간들을 이렇게 밖에 말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수행은 내가 지속해 나가야 할 이유라면 이유겠구나 싶다.
나의 실망은 그래.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단지 나는 나를 찾길 바라는지도 모르겠어.
세상 모든 장소에서.
그래서 네 속에도 내가 있길 바라는 모양이야.
나보다 더 역겨운 내가 거기에 들어 있길 바라는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필 연달아 떠오르는 서시 노랫말처럼.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기억이.
돌아보면 우리에겐 떠올릴 만한 게 없었고 앞으로도 영영 쌓이지 못할 거야.
나의 가장 오랜 벗과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론 너무 아프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만 다른 녀석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지.
전화가 밖으로 도는 메시지를 듣고 나는 잡히지 않는 택시를 그만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얘 전활 안 받넹. 마음이 넘 아팡"
"술 먹고 전화함 어케 ㅋㅋ 그런사람도있지, 걍 둬"
"이러면 역효관데 ㅠ쩔수없징..."
"그럴수있음. 걍둬."
언제 이렇게 크고 단단해졌나.
정수리 머리가 점점 빠지는 이유는 사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뿔이 자라났기 때문이야.
때론 그 뿔이 너무나 두려워.
시뻘건 남산타워가 뾰족하게 날 내려다보고 있었지.
머리가 아파.
아직도 뿔이 더 자라나려는 것만 같아.
남산타워쯤은 무너뜨리고 싶지만 나는 늙은 사자처럼 꼬리를 내리고 돌아선다.
이 뿔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무슨 일은커녕 오히려 무슨 짓을 하면 어쩌나 걱정해야 될 거야.
콱 잘라볼까?
그러면 차라리 헬보이처럼 귀엽기라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