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거 뭐 없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재미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난 반 이상은 이미 경험해 봤을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반은 별로 알고 싶지 않고 빤하고 귀찮을 뿐이라 그렇다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너는 재미있는 걸 한댔다.
그리고 나는 돌고 돌아 이제사 재미가 대체 무엇인지 조금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는 건 다르다.
즐거운 것과 재미있는 것도 다르다.
좋은 건 선택이고 즐거움은 결과이지만 재미는 건들기 전 세상 그대로다.
손을 놓고 있는 윗대가리들은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킥킥, 놀구있네~ 할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도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나도 세상처럼 의식이 건들기 전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처럼 돈 버는 게 재밌고 연애 초기처럼 빤한 데이트 코스들이 재미있어야 된다.
그 설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 무엇 때문인가.
다시,
재미란 무엇인가.
나는 어릴적부터 배우는 족족 평균 이상 잘했다.
그 결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취미 부자가 되었고 남들보다 습득이 빨라 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서 재미있게 놀았다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미움을 사기도 했고 콧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깊이가 없으며 일찍이 호기심이 사라졌다.
내 바탕이면 충분하고 언제든 통할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칼을 갈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칼을 갈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칼을 갈 생각은 없다.
재미란 무엇인가.
못하는 게 없는 와중에도 잘 안 되는 게 있었다.
악기들이 그랬는데 아무리 시간을 들여 연주해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소리가 없었다.
내가 내고 싶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든 똑같이 따라 할 줄은 알았지만 그 때문에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말랑한데 악기는 딱딱했고
나는 아프고 뒤틀리면서 미운 소리를 냈다.
악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올까.
내 소리를 악기가 이해하려면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게 무엇인가.
네가 말했던 재미에 대해서 나는 되묻지 않았다.
너의 답을 듣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본다.
재미는, 잘 안 돼서 나를 자극함과 동시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그러나 심적, 육체적, 환경적 장애로 인해 좌절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끝내 포기가 안 되는 무엇이다.
그런 것이 누구나 하나쯤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안주머니에 품은 꿈과 비슷한 속성인지도 모른다.
재미란 무엇인가.
어제 했던 말이 부끄러워지는,
노력이 썩 통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이다.
그래서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을 원하게 되는 무엇이다.
오늘 하늘이 뿌옇다.
쫌전에는 똑같은 하늘을 두고 하얗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주 거대한 솜사탕에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어느 날은 템포가 빠르다고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빛의 성질이자 마음이다.
마음은 빛이고 마술사이자 예술가이고 학자이고 세상 모든 창조의 아침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것이 신이다.
재미, 마음, 창조, 신,
그런가 보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참 많지 않은가.
누구나 신을 부려 신나게 살 수 있다.
그래, 나도 재미있는 걸 원하겠다.
재미를 추구하겠다.
재미나게 살겠다.
마음을 잘 부릴 일이다.
“돈 많이 버는 거 해라.”
.
.
.
“난 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
.
.
나는 이 두 녀석의 말에 힘이 빠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 이새끼 예술해야 되는데...“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친구 둘을 잃은 대신 무엇이 진실인지, 믿을 만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창조자로 나고 죽는다.
숨 고르는 일부터 번식까지.
태어나 노력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세상에 저항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항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의 형태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부려야 하는데
밖에는 그 훈련을 마치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도 오랜 시간 그들돠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함께 방방 뛰었다.
얼어 죽을 성취, 소속감, 안정감,
김숭늉 작가는 그것을 '쪼개진 죄책감'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날, 상대방은 기억도 못하는 사소한 일들까지 왈칵 쏟아져 내려 정신병자처럼 매일 사과를 하고 다녔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언젠가 아빠가 나한테 그랬다.
"기본도 안 된 자식."
기본은 정하기 나름이지만,
내가 그를 닮았다는 말이 지금도 참 듣기 싫지만,
당신의 기본을 기본 삼는 게 옳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걸음마부터 다시 떼련다.
인간은 어리석고
인생은 참 번거롭다.
수십 번 넘어지고 헤매지 않아도 그저 알게 될 수는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