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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14. 2024

이상한 아들


아버지가 지은 삐짐 더하기 서운한 표정은 내가 돌아갈 때가 되어서도 아니고 약속했던 일정을 엄마 기분대로 파기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술을 마시고 싶어서였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면 술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놈이 언제 커서 나랑 술 한잔 기울일까라는 생각, 기대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걸까.

다른 아버지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까.


얼마 전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이 가고 에릭 카먼도 갔다.

나의 아버지도 그들과 숫자로 비교해 보면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오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와 다시 함께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식 먹고 지내시니 얼굴색도 밝아지고 건강을 되찾으셨다.

근데 반대로 어머니가 아픈 것은 참담하다.

에너지의 성질이라는 것은 참담하다.


술을 끊으신 것이 스스로도 기쁘고 각종 검사지표로도 간을 포함한 장기들이 회복되어서 좋다고 말하신다.

수북이 쌓아둔 각종 영양제도 거의 드시지 않는다.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아들 말을 들어줘서 감사하다.

노력해 주셔서 감사하다.

나름의 자식도리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는 아직도 나를 품에서 놓지 못한다.

단지 믿음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인간부모의 여리고 아름다운 마음일까.


우리는 서로 단절된 기간이 길다.

앞으로는 부모의 바람을 일정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부모는 자식 근심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부모든 자식이든 어떤 이름의 상태에 머무르든 결국 배우고 적용시켜야 한다.


"이제부터 양육하시는 거죠. 근데 이미 다 컸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 이조차 덕분이고 감사한 일이죠."



엄마가 성경에 빠져있다.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다가 예수 어쩌고 얘기를 하길래 나는 또 반사적으로 나온다.


그 당시 예수 같은 사람이 예수 하나뿐이었겠냐고.

드러나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부활 역시 기초는 영혼이 거듭난 것이며(예수가 전도하고 다니던 시절은 최종 진화가 아니다) 그로 인해 몸의 부활마저 가능한 것이다.

그를 통해 사람들이 기적을 본 것은 작금의 사태와도 다르지 않다.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치자.

어리석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에 이르러야만 어리석은 사람들 쥐구멍 들어가 참회하다 부끄러워 따라 죽거나 제 잘못 뉘우치더라.

그 결과 세상(어리석은 개인이 보는 세상)이 달라졌다.

기적이네.

대체 뭐가 다른 거람.


나만해도 피부와 장기가 회복되고 머리칼마저 곱슬에서 다시 직모로 돌아왔다.

애초에 풀려있던 것이 그릇된 삶으로 인해 꼬였다가 도로 풀려났음이 몸으로도 드러나는 것이다.

화분 크기에 맞춰 꼬불거리는 줄기가 예쁜 거라고 인위적으로 묶어놨던 것들에서 해방되고 비로소 태양을 향해 똑바로 간다. 머리카락너마저.


수요일은 교회에서 성경에 나온 인물들에 대해 공부한다고 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남에 대해 공부하지 않아도 그 두꺼운 성경 한 줄 읽지 않아도 모두 알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쓸데없는 걸로 바쁘고 오만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자신과 세계를 전부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멈춰서 망자처럼 떠돈다.




사람은 다르지 않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생각.

다른 조건과 다른 생각이 있을 뿐이다.

조건은 성별, 외모, 지역, 소득 기타 등등... 이걸 왜 설명해주고 있나 싶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돼?

그 결과 서로가 다르다고 말하는 건 인생 쪼렙이나 하는 소리다.

누구나 타인을 이해하고 흔쾌히 맞춰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해야 비로소 인간이다.

머리가 열려서 인류가, 다른 모든 생명마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너랑 달라,

니가 뭘 알아,

나는 특별해 따위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오만한 생각에 믿음을 갖고 있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달라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닮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력을 부숴야 한다. 그러면 중력만으로 절로 된다.

달라지기 위해 노력해 봤자 우리는 생명이라는 거대한 조건 안에서 0.3%도 달라질 수가 없다.

저 믿고 까부는 사람에게만 삶은 지옥이 된다.

머리를 믿지 마.

너라는 너를 믿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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