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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18. 2024

불행한 여행자


비우고 채우고 어쩌고를 하기 위해 한국인이 대표적으로 취하는 방식은 여행이다.

그럴 만한 여유조차 없다고 여기면 전시회를 가거나 맛있는 걸 먹는 등 평소와 다른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그것에 대해 잠시 취하고는 비워졌네, 채워졌네, 또 기분이가 좋았거나 그마저도 무감각하다.

과연 비워졌을지.

채워졌을지.

좋은 게 맞는지.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일 뿐이다.

그 욕망으로 주의가 잠시 옮겨갔을 뿐이다.

그냥 떠나고 싶은 거겠지.

잊고 싶은 거겠지.

벗어나고 싶은 거겠지.

일했으니 보상받고 싶은 거겠지.

남들 가니까 부러워서 따라 가는 거겠지.


할 거면 압도적으로 해야 한다.

안팎 어느 방향으로든.


그들은 전혀 달라지지 못했다.

비워지지도 채워지지도 못했다.

그들이 느낀 것은 환상이자 뇌의 착각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달라져야 한다.


여행이 끝나면, 아니 여행 중에도 주의를 뺏기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여행마저도 지긋지긋한 습성으로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행자가 아닌 관광객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바뀌어 있다.

돌아와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바보 같은 짓을 평생 반복하겠지.

합체하지 못하겠지.

너와 세상은 밖에 없다.

네 안 깊숙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하는 만큼 또 일하는 만큼 긴 시간 눈을 감고 속이 뒤집어져봐야 한다.

그럴 수 없겠지만.

방법을 모르겠지만.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또 무엇에서의 나,

그런 건 없다.

그런 걸 스스로 그림 그리고 구분 짓기 시작하니 어떤 나의 모습은 싫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통합하여 더욱 거대한 내가 되어야 한다.

오락가락하다가 미쳐 손쉽게 가까운 병원에 가고

오락가락 버티지 못해 약으로 잠재우고 끝내 깨닫지 못하는 현실이다.

오락가락 미치고 팔짝 뛰어서 끝내 찢겨진 존재 전부를 규합한 총체가 내가 되어야 한다.

그 존재는 캐릭터 없음과 동시에 온세상 전부다.

그러고 나서 떠나면 모든 순간에 천국을 발견할 것이다.


천사는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고 악마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생 중에 그것을 습득해야 하며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적으면 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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