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배럴아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회재 Mar 17. 2024

말라가는 반도


나는 한국사회에서 강요하는 대부분의 과정을 하다 말았다.

학업은 각기 다른 분야를 두 차례 하다 말았는데 졸업이라는 끝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습득은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습득의 과정이 졸업이라는 이름을 지나게 되면 하나의 분야가 종결됨과 동시에 허무와 군더더기가 달라붙는다.

서울대 나온 놈조차도 그것이 자신의 걸림돌이라 말했다.

그러나 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있고 돌을 딛고 올라서는 사람이 있다.


하나의 분야는 오억 개의 분야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분야란 인간이 권력을 위해 근원을 제멋대로 분류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끝마친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의 한계를 긋는 것과 같다.  


직업도 수차례 바꿨다.

기생충처럼 생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사마귀, 거북이, 원숭이, 코끼리...

나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를 옮겨 다니며 점점 거대해졌다.

이윽고 비룡마저 조종할 줄 알게 되었다.

궁극의 하늘마저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나에 정착하고 성실을 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무언가 부족거나 지나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거듭될수록 겉으로도 그런 모습이 되어갔다.


끈기가 부족해, 멘탈이 약해,

나는 반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진정한 끈기와 멘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들은 어느 지점 이후 존재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말았다.

그들은 그게 아니면 생존할 수가 없다.

그거 아니면 먹고 살 용기가 없다.

오직 그게 아니면 그간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고 존엄마저 사라지는 줄 안다.

그들의 시간과 노력은 외부의 지배하에 존재하므로 그것을 부릴 줄을 모른다.

그들은 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뿌리를 모른다.

뿌리 없는 이파리로 자라 꽃이 떨어지면 그제야 바람을 알아채고 벌벌 떨다 말라 죽는다.

오직 태양만을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에 궤도를 벗어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나약하거나 위험한 일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대기를 벗어나는 과정의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들이었다.


생명의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변화보다 거대해지지 못하면 소멸한다.


그들은 태어난 지점에서 운동해 본 적이 없고 오직 그 주위를 맴돌며 사수하는 것에 총력을 다한다.

때문에 집이 좁고 빽빽하다.

한국인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밀려나고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 정신이 뼛속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나머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엉망진창이다.  

마음도 생각도 몸도 본래 인간답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지구가 집이라고 말했다.

지구가 집이라는 말은 사물로써도 그렇지만 정신으로써도 그렇다.

지구가 집이라면 외출은 어디로 해야겠는가.

또한 정신은 지구밖에서 더욱 선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무한한 우주다.

사람들은 무한하고 알 수 없는 우주의 압박이 두려워 생각하는 것도 똑같이 두려워한다.

우주를 모르니 생각도 어떡해야 하는지 모른다.

몸은 지구밖으로 나가면 죽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정신을 잃을까 봐 정신을 포기했다.


현대의 어둠은 빛이 따갑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빛은 끝없는 어둠에 지친 지 오래다.

그렇게 서로는 스치기만 할뿐 하나 되지 못한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숭이 유튜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