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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Apr 15. 2024

구태여 안경 쓰는 시간

위선


굵직한 당근을 빵빠레처럼 꼭 쥐고 먹는다.

나이 들어 가지런해진 앞니로 사각사각 연필 깍듯하다가 혀로 천천히 뒤집고 어금니로 다진다.

완성된 요리 위에 갓 짜낸 침을 얹어 홀로 보낸다.

침은 매번 새로운 풍미를 더하고 어느 음식에나 어울리는 가장 완벽한 조미료다.

빵빠레 쥔 소년이 홀 속에서 전율한다.


평생 입술 밖에서 완성된 음식을 밖의 의도대로 삼킬 뿐이라면 정신은 영원히 사탕 빠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감춰진 것들은 홀 속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나 아이는 왠지 모르고 점차 쭈글쭈글해진다.

아이는 검게 죽어가는 캐러멜라이징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부스러기가 아침마다 아이의 입술에 띠를 두른다.

침이 언제까지 아이를 살려줄지 모른다.


입안이 가장 훌륭한 주방임을 안다.

아삭 소리 흰 눈밭을 밟는듯하고 흰 토끼 한 마리 뛰는듯하여 가까이 다가가니 아, 당근 먹는 나로구나.


토끼가 당근을 눈으로 가져간다.

당근을 눈꺼풀에 밀착시키고 잇몸처럼 당근을 씹는다.




진실이 기억으로 분리되어 판단하는 데까지 사람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순간에서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달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인류의 기원이라든지 그 밖에 모든 가설과 선전에는 이기가 스며있다.

가설을 만들고 그것을 멍하니 진실로 믿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리석다.

유력한 질량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또 그것이 왜 무거운지 사람들은 단번에 알지 못한다.

수백 년이 지나서야 증거를 통해 믿기도 한다.

증거는 증거를 위한 증거들일뿐이다.

그러므로 설명이 많을수록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진실은 가볍고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증명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체 이깟 눈으로 무엇을 얼마나 깊이 알 수 있다고...




주의를 곳곳으로 분산시켜 어둠을 탐색하고 특정 지점의 이야기를 은하처럼 휘돌려나갈 때, 시력은 전혀 쓸모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한 데 모아 빛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안경을 쓰고 작성했다.

전자기기 앞에서는 잠시 안경을 걸치기를 허한다.

쓸모없는 짓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다.


평평한 화면이 둥글게 말려 코앞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그 밖에 사물들은 허름한 병풍으로 전락한다.

손가락이 레고처럼 껄떡이며 플라스틱 철길이 팔꿈치를 지나 어깨를 조인다.

그 위로 잿빛 기차가 역행한다.

기차가 어깨 위로 올라가면 위험하다.


안경은 확실히 이상하다.

불량한 조종사가 들어있다.



개기일식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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