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아파트 이야기_번외편
땡땡씨는 엄마 집에 다녀올 때면 트렁크가 가라앉는 건 아닐까 매번 걱정할 만큼 갖가지 것들이 들린 채 돌아온다. 보통은 김치, 쌀, 참깨, 참기름, 감자 등 땡땡씨의 엄마가 키운 온갖 작물들로 차가 한껏 무거워지곤 했지만 오늘은 운전석에 그녀의 엄마가 휙 던져 넣은 작은 보자기 뿐이었다. 이게 뭐냐며 고개를 드는 땡땡씨에게 엄마는 “너 뭐라도 돌보고 키울 줄 알아야 돼. 그래야 너도 돌보는 거다.” 말하곤 어여 가라며 손을 흔든다. 땡땡씨는 나 하나 돌보기도 벅찬데 또 뭘 키우라고 그러냐는 말을 추임새처럼 궁시렁대며 차를 출발한다.
오늘 엄마 집에서 돌아오는 땡땡씨의 차가 유달리 가벼운 이유는 그녀가 집이 아니라 회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마감 기한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이번 주에는 끝장을 봐야겠다는 상사의 야단에 난데없이 일요일 새벽부터 길을 나서게 됐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말 통하지 않는 상사와 바쁜 업무에 땡땡씨는 제대로 된 끼니도 챙기지 못한 채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이만하자는 상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시 자리를 비운 대리님에겐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회사를 나왔다.
땡땡씨는 엄마가 새벽에 챙겨준 작은 보자기를 손에 쥐고, 지친 몸을 이끌며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와 긴장이 풀리니 이제서야 배가 고파져 뭐라도 먹고 싶어졌다. 매일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엄마에게 받아온 음식들이 종종 상했던 만큼, 이번만큼은 엄마가 챙겨준 음식을 먹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보자기를 풀어보았다. “어? 이게 뭐지.. 먹을 수 있는 건가? 양파라기엔 싹이 너무 자랐는데.”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 머뭇거리던 찰나에, 땡땡씨는 엄마가 했던 “뭐라도 돌볼 줄 알아야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정체도 모르는 식물을 당연히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 뭔지는 궁금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 검색해보곤 수선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 엄마 집에 조그마하게 자리잡은 노란 꽃 앞에서 오래도록 휴식을 취했는데,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곤 수선화를 선물한 것 같았다. “오, 이게 수선화였구나. 너도 참 집 떠나서 여기까지 오고.” 괜히 수선화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코가 찡해오는 땡땡씨는 배고픔도 잊은 채, 수선화 구근을 담을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언젠가 카페에서 받아온 유리잔에 구근을 반쯤 걸쳐 놓고, 물을 가득히 채워 창가 근처에 조심스럽게 두었다.
제대로 신경 쓰지도 못했는데 혼자 봉오리를 틔운 것이 기특해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더. 인터넷으로 키우는 법을 검색해 집에서 햇빛이 제일 잘 드는 자리로 옮겨주고 틈틈이 물을 갈아주었다. 집에 오면 침대에 쓰러져 기절한듯이 자곤했는데, 이젠 집에 들어서자마자 수선화를 먼저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땡땡씨의 마음을 알아챈 듯 이 작은 식물은 매일같이 제 몫을 해내며 쑥쑥 자라주었다.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맞은 토요일 아침 햇빛 속으로 고개를 쭉 내밀고 있는 수선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땡땡씨는 문득 구근을 전해주던 엄마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