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궁화 아파트 이야기_2 : 405동 201호의 참나무
405동의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참나무와 무궁화 아파트의 인연은 아주 깊다. 무궁화 아파트의 경비는 참나무가 아주 작은 열매였을 때를 기억한다. 십수년 전, 참나무는 201호에 사는 소년의 손에 들려 무궁화 아파트에 오게 되었다. 참나무가 말하길, 자긴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과 놀던 평범한 도토리였다고 한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또래 열매들과 운동장을 구르며 놀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자신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주머니에 챙겨왔다고.
도토리들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가는 일은 흔했기 때문에,열매는 놀라거나 슬프진 않았다. 그저 새로운 친구가 될 소년이 궁금하고, 어디로 가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소년은 아파트 화단을 손질하던 경비에게 꾸벅 인사하곤 그대로 뛰어 들어가 엄마에게 열매를 자랑했다. 그리곤 도토리와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베란다 화분에 열매를 심었다. 소년이 지극정성으로 관심을 주자, 도토리는 이내 싹을 틔워내더니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비좁은 화분 탓인지 도토리 나무는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고, 결국 아파트 화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종종 소년은 나무에게 다가와 슬쩍 자신의 키를 재어보며, 며칠 전보다 더 자란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시간이 흘러 도토리는 어엿한 참나무로 자라나 소년이 사는 405동의 입구를 지키게 되었다. 그동안 성인이 된 소년은 어느 날 405동을 떠났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맘때쯤, 참나무는 소년의 또래 아이를 보면 반가운 마음에 이파리를 흔들다 톡 하고 도토리를 떨어트리곤 한다. 경비는 그녀의 발끝까지 굴러온 도토리를 주워 들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참나무에게 그 소란스럽던 도토리들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참나무가 아파트 화단에 자리 잡은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무렵, 화단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가지고 놀던 단지 내의 도토리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는데, 경비가 귀 기울여보니 개중에 누가 진짜 도토리인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경비가 열매들을 쓱 훑어 보았더니, 열매들의 생김새 뿐 아니라, 열매 옆에 달려있는 이파리의 모양도 모두 달랐다. 그러니 도토리들은 저마다 외모를 뽐내며 자신이 참 도토리라며 으스댔다.
그 중에서도 405동 도토리는 동그라니 귀여운 모자를 내세우며 내가 진짜 도토리라며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407동과 408동에서 온 도토리도 “넌 이거 없잖아! 우리 모자를 봐.”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감싼 화려한 털모자를 들이밀었다.
토론을 엿듣던 경비는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며 중재에 나섰다. 그리곤 너희 모두 참나무의 도토리라고 한마디를 건넸다. 도토리들이 의아해하자, 경비는 열매의 생김새에 따라 부르는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동글동글 반드러운 모자를 쓴 405동 도토리는 갈참나무, 화려한 털모자를 쓴 407동과 408동 도토리는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 아파트에 있는 도토리 말고도 다른 도토리 가족들이 더 있다고도 했다. 그러자 도토리들은 좀 놀라더니 서로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 날 이후, 도토리들은 한 식구처럼 어울려 지냈고, 지금은 각자의 아파트 앞을 지키는 든든한 참나무로 성장했다. 경비와 405동 참나무는 귀여운 옛날 이야기로 오늘 하루도 기분 좋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