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도토리야 !

가을에 부치는 편지

by 잇기


올해는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 낙엽이랑 열매들이 발에 치이던 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밤 사이에 첫눈이 왔어. 그래도 아직은 길가의 식물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걸으면서 곳곳의 식물들을 구경하다 가끔 아는 나무나 열매를 만나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드는데 입 밖으로 꺼내긴 낯간지러워서 속으로만 이름을 불러봐.


그중에서 도토리는 이리저리 굴려보고 싶은 재밌는 이름이야. 도토리 하고 부르면 때굴때굴 굴러가는 동그랗고 조그만 열매가 떠올라. 도토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생겼을까. 도톨도톨해서 도토리라는데 진짜일까 하고 검색해 봤더니 무려 1417년에 쓰인 책에 처음 등장했대. 옛날에는 돼지를 ‘돝’이라고 불렀는데 돼지가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가 이 열매였던 거야. 그래서 돼지의 밤이라 해서 ‘도티밤’ ‘도토밤’ ‘도톨밤’으로 이어지다가 도토리가 된 거래. 돼지와 도토리라니! 나란히 놓기도 생뚱맞은 이름들이 실은 저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제는 도토리를 생각하면 때굴때굴 굴러가는 열매 뒤를 쫓아가는 몽땅한 발이 같이 떠오를 것 같아.


다음에 밖에 나가면 어떤 나무를 만났는지 또 어떤 열매를 봤는지 알려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식물이 하나 더 생기면 좋겠거든! 그럼 또 편지할게.



Ps. 얼마 전 공원에 갔다가 본 귀여운 도토리 사진도 같이 보내. 갈참 나무 아래에 도토리가 수두룩하게 깔려있는데 그중에서 모자가 온전히 달린 건 얘 하나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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