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식물

#2020 잇기 가족들이 만난 식물들

by 잇기

[로즈마리]

지난 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엄마가 베란다에 살던 로즈마리 몇 가지를 꺾어다 침대 머리맡에 뒀더랬다. 그간 허브는 향이 좋지만, 여러모로 까다로워 잘 키우기가 힘든 식물로 알고 있어 이 녀석도 얼마 못 가 죽을 줄 알고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심히 살펴보니 밑으론 얄따란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자그만 새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처럼 로즈마리가 보여준 의외의 생명력에 감탄해 나는 물도 자주 갈아주고, 햇빛 대신 수면등을 열심히 쫴 주기도 하며 학기 중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잊곤 했다.


하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그런 것인지, 갑작스러운 나의 관심이 독이 됐던 것인지 로즈마리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물을 자주 갈아주고 가지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싶어 상태가 좋은 가지 두세 개만 남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상태가 악화된 로즈마리는 학기가 끝날 때 즈음해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고, 지금 그 자리엔 미미한 향기만 남은 로즈마리가 남겨져 있다.


[아파트 화단의 식물들]

우리집 아파트 화단엔 각기 다른 식물들이 자라가고 있다. 가끔은 아파트를 배회하며 어떤 식물들이 있는지 살펴보곤 하는데,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그저 싱그러움에 감탄하며 경비 아저씨께 홀로 감사한 마음을 보내곤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아예 카메라를 들고 화단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그리곤 몇 시간 동안 아파트 화단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물들을 찍었는데, 그러다 삐죽 튀어나온 숨겨진 새싹들을 발견하면 홀로 인사를 전하며 재밌게도 시간을 보냈다.


[열매-밤]

이 빨간 장갑 한 쪽은 지난 가을 숲과 공원이 합쳐진 곳에서 산책하던 중 발견했다. 누가 왜 두고갔을까?에서 시작하는 상상은 이내 밤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장갑의 다섯 손가락을 꽉꽉 채우도록 나를 신나게 한다.


[파인애플]

겨울에는 식물원 온실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 날도 산책을 나갔다가, 날이 너무 추워서 열대식물원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자 들어갔다. 오랜만에 와서 두리번 거리던 중 열대화과원을 발견했다. 화과원? 바나나가 있으려나 하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맞이하는 초록색 바나나.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내렸더니, 그 아래에 뾰족한 바늘을 두른 듯, 노랗게 물들고 있는 파인애플을 발견했다! 파인애플이 이렇게 생기다니? 마치 잎 사이에서 공중부양하듯, 파인애플이 둥둥 떠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끔 했다. 나무에 달려있을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땅에서부터 높이 올라와 자라는 식물이었다. 잎도 단단하면서 가장자리에 톱니가 굉장히 날카로웠다. 마치 왕관같은 파인애플을 지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가까이 사진을 찍으려다 스윽 뒤로 물러났다. 파인애플아 다음에 또 보자. 


[무화과나무]

2020년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특이한 모양의 이파리를 2021년 어느날 사진첩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새까맣게 잊고살다가, 이제서야 저 이파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사진을 검색해보니, 저 이파리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무화과나무의 이파리와 매우 흡사했다. 많은 무화과 나무들을 찾아보면서 나는 점점 저 이파리가 무화과나무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조그마한 열매도 무화과가 될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무화과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중 손가락에 꼽았는데, 이건 정말 운명이다. 운명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도, 저 무화과 나무와 나는 운명이라고 마무리 지으며, 내 인생 과일 순위에서 두 순위 정도 더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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