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공부는 굉장한 꼼꼼함을 요구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빠짐없이 모두 필기했고,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숙지했다. 교과서 구석에 작은 글씨로 쓰여있는 내용이나 선생님이 농담처럼 지나간 말에서도 문제가 출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시험에서 계산 실수를 한 번만 해서 한 문제를 틀리면 등수가 10등씩 내려갔다. 덧셈과 곱셈을 할 때마다 맞는 계산을 한 것인지 두세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9 곱하기 7은 정말 63인가? 정말 63이야? 다시 생각해 보자. 진짜 63인 거 같아. 스카이캐슬 김주영 선생님이 예서에게 말했던 것처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2학년부터였나, 독서가 취미였던 나는 책을 읽지 못했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페이지 수를 확인했고, 책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과 숫자, 연도에 집착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에 그 이름, 숫자, 연도가 기억이 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꼈다. 책을 읽는 것에 흥미는 잃었지만, 교과서를 그런 식으로 읽어서 사소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까먹지 않아서 시험에서 모든 문제를 맞힐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예비 고3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제는 수능 공부도 병행해야 한다며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했다. 내신과는 다르게 꼼꼼함은 독이 되었다. 뒤에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쉬운 문제는 한 문제에 생각하는 시간을 1분 이상 가져가면 안 되었다. 내신에 너무 적응해 버린 나머지 수능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입에 있어서 수능은 중요했다. 가고 싶었던 대학에는 대부분 수능 최저가 있었고, 수능을 망친다면 선택지가 많이 줄어든다. 그리고 수능으로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해도 3학년 내신성적의 중요도는 1, 2학년 때보다 높아진다. 3월 모의고사는 망했지만 평가원에서 출제하는 6월 모의고사는 원하는 대학을 갈 성적이 나올 정도로 꽤 잘 봤다. 하지만 이건 내 실력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만큼 맞추는 게 아닌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에 따라 성적이 들쑥날쑥했다. 수능을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 성적을 선생님은 다 알고 있겠지. 내 실력이 만천하에 들통나면 애들이 나를 무시할 게 뻔해. 스스로의 걱정에 잠식되어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갔다.
그 무렵 팔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빨간 줄이 생겼다. 자습시간에는 머릿속을 채우는 걱정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해 책을 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앞만 보고 앉아 있었고, 때때로 지쳐서 엎드려 잠을 잤다. 수능연계 지문들은 양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걸 모두 숙지할 때까지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점점 패닉에 빠져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좋았던 내신성적도 점점 떨어졌다.
죽어버리면 이 걱정을 해결할 수 있을까. 죽어버리면 내가 이렇게 힘든 걸 사람들이 알까.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시동이 걸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왔다. 누가 반복 재생을 걸어놓은 것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떨어져 죽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점심시간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인 잔치국수가 나왔다. 국물을 받아서 자리로 가는데 잔치국수의 국물이 출렁이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울렁거림을 인식하는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토하면서 쓰러져서 죽으면 너무나도 쪽팔릴 거라는 생각에 숨을 곳을 찾았다. 식판을 근처 식탁에 그대로 두고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며 헛구역질을 했더니 식은땀으로 뒷목이 축축해졌다. 10분이 지났을까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죽을 뻔했다. 식당으로 돌아오니 친구들은 밥을 다 먹어갔고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나를 걱정했다. 속이 안 좋다고 자습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아까 죽을 뻔했는데 진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이후에 별안간 숨이 안 쉬어지는 일이 있긴 했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죽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숨이 안 쉬어지는 일은 한동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