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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릎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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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릎 Oct 03. 2016

[Part 2. 전개]

당신 앞에 정차하다.


왜 그럴 때 있잖아, 노선은 잘 모르고 이 번호가 그 근처로만 간다는 사실에 일단 오르고 보는. 스마트폰보다도 바깥 풍경을 더 주시하게 되는 그런. 보통은 노선을 보면서 대충 내릴 곳을 찾지. 관건은, 내리는 정류장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에 있어. 


그럴 때 ‘정차합니다’라는 버튼, 어렵지 않아? 


근처에 온 것 같은데 아무도 벨을 누르지 않을 때, 그리고 내가 서있거나 앉은자리에서 조금 애매한 위치에 벨이 놓여있을 때. 나는 고백 멘트를 준비하고도 뱅뱅 도는, 그러니까 그녀 주위를 도는 것도 아니고 준비한 마음으로 제 머리만 뱅뱅도는 소년처럼 생각만 많아지다가, 걱정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묘한 반발심 혹은 모험심으로 합리화를 시작해. 한 정거장 더 가면 목적지와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아니면 이대로 계속 가면 더 괜찮은 약속이 있을 거라는. 


지금까지의 내가 그랬어. 확신이 없었던 걸까, 나는 왜 자꾸 내가 굴리지도 못하고 손잡이만 잡아야 하는 흔들과 주춤의 칸에서 다음을 맡기고 또 괜한 기대를 했던 걸까. 


원형 룰렛도 아닌데 나는 단선을 향해 다트를 들고 욕심만 내고 있었네. 


빨간 버튼을 유난히도 미뤄냈던 게 아닌지. 택시도 아닌데, 자꾸 욕심내지 말 것. 내가 더 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거의 다’라는 건 이제 알겠으니, 얼른 내려서 거의에서 거기까지의 거리를 내 발로 모두 밟아낼 것.


너무 많은 정거장들을 지났지만 왔던 곳을 다시 가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약속이 더 반가울 거야. 확인하려는 의심 말고 확신하려는 진심으로 정차벨을 붉게 물들일 것. 이번에는 환승 말고, 무조건 하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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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라고 말하자, 네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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