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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Jun 16. 2020

택배 기사님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어떤 경험이 "죄송하다"는 말을 하게 만든 걸까

최근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약관과 상품설명서를 받아야 해서 인천으로 주소를 옮기고 이쪽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사실 신림으로 이사를 바로 갔거나 가산동에서 더 살 수 있었다면 그쪽 편으로 받았을 테니 이 택배기사님과는 연락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택배사도 대한통운이었다면 받을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이 택배기사님이 내가 가져야 할 물건을 배송해주는 것 자체가 확률과 확률이 겹친 일인 셈이다. 과한 의미부여 일지 몰라도 만나지 못할 수많은 가능성을 뚫고 문자 한 통으로 연결된 사이인 것이다.

오늘 카카오톡으로 롯데택배 알림 문자가 도착했을 때, 옥상으로 배송됐다고 적혀있어 지금 사는 빌라에 옥상이 있었나 상기했다. 생각해보니 5층이 전부인 빌라에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이라 옥상도 없었다. 옥상이 있었다면 그곳에서 빨래가 휘날리거나 누군가의 담배 연기가 그곳에서 보였겠지만 서울로 이사 가기 전에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옥상으로 물건을 가져다 놓았다는 알림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혹시라도 내가 주소를 잘못 말해서 기사님이 헛걸음하신 건가? 그러면 죄송한데...라는 심정이었다. 주소를  확인하니 대X아X트 는 정확했고 동과 호수도 정확했다. 틀린 것이 아님을 알고 안도했는데 느닷없이 기사님이 연신 죄송하다며 경비실에 맡겨 두었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며 경비실로 가서 택배를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와 약관을 천천히 읽었다. 물건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 빠르게 희석됐고 별 생각이 없었다.

휴대폰 알림을 꺼놓는 습관 탓에 틈이 날 때 수시로 문자함을 확인하는 편이다. 문자함에 들어가니 모르는 번호 옆에 1이 떠있었다. 확인을 하니 저 문자가 와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묘했다기보단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전화를 거는 습관은 내가 하는 일이 무작정 전화를 걸어야 할 때가 잦은 일이라 손에 익은 것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게 당연했던 일이 택배기사님한테는 압박이었을까 싶었다. 결정적으로 저렇게까지 죄송하다고 말할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저렇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다른 경험치들이 쌓여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집 앞에 물건을 놔두지 않았다고 욕을 했을 수도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5층 빌라를 오르내리며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어떤 경험이 기사님한테 저 문자를 보내는 데 영향을 미친 걸까. 조금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붙볕 더위에 습기 가득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 나르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나는 안다. 공장에서 쉴 새 없이 포장을 하고 손이 부르트도록 박스를 까보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린 일이 있어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돈을 번다고 해서 그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느껴보았다. 택배 기사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사님의 문자를 보고 괜히 죄스러워졌다. 괜찮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 일이 택배기사님께 안심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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