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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Dec 27. 2020

#80 코로나 시대에 가볼만 한 곳

코로나 블루에 걸린 딸

첫째 딸아이는 나를 닮아 역마살이 심하다. 집에 잠시도 가만히 못 있고 어딘가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거의 일 년 동안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결국 딸아이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빠! 나 너무 답답해 차 타고 우리 밖에 좀 나가면 안 될까?"

딸아이는 하필 올해 2차 성징이 시작되었다. 예전과 다른 호르몬 분비로 가뜩이나 정서가 불안정한데, 매일 지속되는 온라인 수업과 집밥에 인내심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알았어 딸아! 서울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장소를 한번 찾아볼게"

아침 식사 후 나온 그릇들을 설거지하는 동안 여자 세명은 외출 준비를 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어떤 장소를 갈까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서울에 30년 넘게 사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발견했다.


회사를 관두고 난 이후 운전을 안 했더니 자동차가 엉망진창이었다. 검은색 자동차는 어느새 회색 자동차로 바뀌어 있었고, 새들이 이곳저곳 실례를 하고 도망간 자국들이 발견되었다. 오래간만에 외출인데, 깨끗한 차를 타고 싶어서 트렁크에 있는 걸레를 빼서 열심히 차를 닦았다. 거의 30분 정도 차를 닦고 나니 차가 원래대로 검은색으로 돌아왔고 여자 세명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제, 시동만 걸고 서울에 숨어있는 그 장소로 가면 되었다.

"끽~끽~끽~끽~........"

자동차 키를 넣고 아무리 시동을 걸어보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밖에 방치해 두었더니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다. 정말 힘들게 외출 준비할 결심을 하고 모두 준비를 마쳤는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 김이 샜다. 여자 세명이 다들 실망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데, 오기가 발동했다.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러서 차량 배터리를 교환하고 30분 만에 자동차 시동을 걸어 우리 가족은 흥선대원군이 사랑했던 별장인 석파정으로 향했다.


석파정은 원래 조선 후기 문인 김흥근의 소유였다. 그런데 흥선 대원군이 석파정과 주변 경관에 반해 김흥근에게 별장을 팔 것을 수차례 요구하였으나 김흥근은 거절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이 석파정을 차지하기 위해 치사한 방법을 썼다. 자기 아들이자 왕인 고종을 데려와서 함께 석파정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다. 당시 법에는 왕이 수면을 취한 장소를 신하가 소유할 수 없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흥선 대원군은 김흥근으로부터 별장을 빼았았다.

별채 뒷편에서 하늘이 예뻐 찍은 사진, 사방이 뚫려있는 석파정
고종 황제가 묶었던 방, 이부자리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키가 150도 안되셨던 것 같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 화려한 장식의 성당들과 성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이런 건물을 못 지었을까란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유럽의 건축물보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건축물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건축물들은 주변 자연과 이질적이지 않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처마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4면이 모두 뚫린 석파정에 서 있으면, 건축물이 주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한 액자 틀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럽의 건축물들처럼 어린 시절에는 내가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나는 넓은 세상의 조연으로 살게 되었다. 1학년 때는 대통령이 꿈이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과학자로 바뀌고, 중학생이 되면서 꿈은 사라졌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른들이 좋은 대학교만 가면 인생이 다 해결된다고 하니 그냥 시험 점수 올리기 위해 살았다.


나를 닮은 초등학교 딸아이의 꿈도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소박해지고 있다. 처음엔 강수진 같이 멋진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했는데, 발레 학원에서 본인보다 잘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꿈이 점점 작아졌다. 발레리나에서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다며 지난 1년 동안 춤을 추고 노래를 연습하더니 아이돌이 되면 극성팬들이 무섭다면서 이젠 스튜어디스로 꿈을 바꾸었다. 매년 바뀌는 딸아이의 꿈을 보면서 벌써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석파정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소원바위.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를 보며 소원을 빌고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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