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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Dec 27. 2020

오늘은 MSG 먹으면 안 될까?

요리하기 싫어서 배달을 많이 시키다 보면 어느 덧 다음달에 배달의 민족 VIP가 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항공사 마일리지 쌓아서 모닝캄 되는 것은 기분이 좋은데, 배달음식 앱에서 주는 VIP는 영 달갑지 않다. 마치 주부로써의 임무를 다하지 않은 느낌이 든달까? 그러던 중 딸아이가 내게 부탁하듯 말했다.


"아빠, 오늘은 MSG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배달 음식 좀 먹으면 안 될까? 집밥만 너무 오래 먹었더니 지겨워."

"어, 그래. 무슨 음식을 먹고 싶은데?"

"불맛 나는 짬뽕과 볶음밥을 먹고 싶어!"

"응 알았어!"


배달비 3,500원을 아끼기 위해서 중국집에 포장 주문을 했다. 10분 뒤 중국집을 찾아갔다. 마침 주문한 음식을 포장하고 있던 중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포장된 음식이 식기 전에 집으로 급히 왔다. 식탁을 차리고 포장된 음식을 꺼낸 후 아이들과 아내를 불렀다.


"애들아, 점심 먹자!"

"와! 신난다!!!"


이 얼마만의 중국 요리인가! 볶음밥을 짜장에 잘 비빈 후 한 입 베어 물었다. 다량으로 들어간 MSG가 내 혀에 착 달라붙더니 뇌에 "정말 꿀맛"이라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낸다!


"아빠, 진짜 맛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거야?"


그간 돈 아낀다고 별짓을 다 해봤다. 냉장고 파먹기부터 시작했다. 언제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식재료들을 냉장실로 일단 옮긴 후 녹기 시작하면 심폐 소생술로 되살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맛이 살지 않는 식재료는 라면 스프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되살려 놓았고, 역시나 딸아이들은 라면 스프의 마법에 속아 아빠 진짜 요리 잘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화장실 세면대 배수관 교체 공사도 직접 했다. 보수센터 아저씨에게 맡겨도 되는데 아저씨가 한 번 왔다 가시면 적어도 10만 원은 드려야 했다. 새 배수관은 1만 원 밖에 안 하는데, 인건비 9만 원을 드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같으면 내 몸 편한 것이 제일 중요하니깐, 아무 고민 없이 보수 센터 아저씨를 불렀을 텐데, 지금 같은 비상시국(외벌이)에는 어림없다. 유튜브를 통해 배수관 교체 공사를 1시간 정도 학습한 후에 과감하게 새 배수관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호기롭게 자랑했다.

 

"자기야! 배수관 교체 10만 원 드는데 내가 직접 하면 1만 원에 할 수 있어!"


자랑스러운 얼굴로 아내를 쳐다봤는데, 아내는 이런 내가 안쓰러운 표정이다.


어제는 차량 배터리가 외출 전에 갑자기 방전되어서 배터리를 교체해야 했다. 배터리를 사서 직접 교체하면 6만 원이면 되는데, 업체에서 교체를 하면 14만 원이나 했다. 8만 원이 아까워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교체 방법을 학습하고 있는데, 배터리 교체는 차마 직접 못할 것 같았다. 공구만 있으면 금방 할 수 있는 작업인데, 배터리 교체 시 주의 사항을 보고 간이 작아져서 감전이라도 될까 너무 무서웠다. 게다가 배터리 안에는 황산이 들어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배터리 교체하다 황산에 잘 생긴(?) 얼굴이라도 다칠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눈을 질끔 감고 출동 서비스 아저씨에게 SOS를 보냈다. 10분 뒤에 나타난 아저씨는 능숙한 작업으로 배터리를 교체하시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아, 그냥 내가 할걸! 왜 이렇게 쉬워 보이지?'

  

외벌이 이후 적은 돈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생존 능력이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나는 이제 혼자서 빨래, 요리, 청소, 육아를 할 수 있다. 아이폰 배터리도 교체할 수 있고 화장실 배수관 교체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면 혼자 교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수다 능력 또한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 추세로 가다 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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