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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02. 2021

#85 주부는 신용이 없어서 안됩니다.

마이너스 통장 연장하기

사회 초년생이 입사하자마자 만들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마이너스 통장이다. 나 역시 외환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외환은행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고, 해외출장 자주 다니시는 부장님 대신 환전하러 자주 갔기에 그곳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열었다.


처음엔 마이너스 천만 원짜리 통장이었는데, 애 낳고 살다 보니 마이너스통장이 5천만 원까지 늘어 있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매달 이자가 들어오니 좋았고, 나 역시 미래 월급을 당겨서 돈을 쓰니 서로가 행복했다.


매달 회사로부터 월급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들어오니깐, 매년 있는 신용 대출 연장 심사도 정말 간단했다. 매년 12월에 외환은행 본점에서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오는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손주부 님 안녕하세요. 외환은행(지금은 KEB하나은행이다) 본점 XXX차장이라고 합니다. 지금 XX회사에 근무 중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고객님의 신용대출이 자동 연장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1분도 안 되는 전화 통화 만으로 매년 마이너스 통장의 생명은 연장되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에 은행 본점에서 전화가 왔다.


"손주부 님 안녕하세요. KEB 하나은행 본점 XXX차장이라고 합니다. 지금 XX회사에 근무 중이신 거죠?"

순간 고민이 되었다.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신용대출이 자동으로 연장이 될 터인데,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니요. 2020년 6월에 퇴사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차장님은 순간 당황하시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 그럼 다른 회사로 이직하셨군요?"

"아니요, 지금은 전업주부입니다. 그리고 부업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네?......................."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시면 소득금액 증명을 하셔야 할 텐데......."

차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씩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작가로서 지금까지 번 돈은 63만 원이고, 내년에 책을 낼 계획입니다. 제 현재 신용등급이 1등급인데, 저를 보고 그냥 신용대출 연장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런 식으로 신용대출 연장은 어렵고요. 신용대출을 개설하신 지점에 문의해 주세요."

순간 섭섭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은행은 맨날 수많은 광고로 "당신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친구가 아닌 남"이 되어버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설 지점에 연락을 했다. 예상대로 지점도 난감한 입장을 표명했다.
"손주부 님도 잘 아시겠지만, 저희가 회사 이름 보고 대출해 드린 거지 고객님 신용 보고한 것은 아니거든요."


헛웃음이 나왔다. 내부 규정에 따라 일하는 차장님이랑 언성을 높여보았자 서로 마음만 상할 뿐이니 그냥 수긍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 손주부 작가에게 신용대출 잘못 승인해 주었다가 나중에 부실 채권이 되면 본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심심해서 내 이름을 검색 포털에서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브런치를 만드신 Daum에서는 "브런치 추천 작가 손주부"가 검색이 된다. 그러나 네이놈에서는 이런 검색 결과가 뜬다.

 

"제안(?): 손두부로 검색하시겠습니까?"


이럴 수가 나의 명성은 아직 손두부에 못 미친다.


네이버에서도 "작가 손주부"가 검색되는 날까지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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